[천자 칼럼] 샤넬의 굴욕
지난해 샤넬의 ‘오픈런’ 현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수백 명의 인파가 개장 전 샤넬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선 진풍경을 연출했다. 전날부터 백화점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샤넬 노숙자’부터 대신 줄을 서주는 ‘오픈런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픈런 현상은 롤렉스 등 다른 명품과 미술품 시장으로 확산했다.

이 같은 오픈런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보복 소비심리에 명품 구입 후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이른바 ‘샤테크(샤넬과 재테크의 합성어)’ 수요가 가세한 결과였다. 콧대 높은 해외 명품업체들은 이를 틈 타 가격을 줄줄이 올렸다. 이 결과 명품 3대장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지난해 한국에서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

최근 명품관 앞의 오픈런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새벽부터 줄을 서던 오픈런은 오후 6~7시 퇴근 시간에 달려가도 입장 가능한 ‘퇴근런’으로 바뀌더니, 이제 매장 앞 대기 행렬 자체가 실종됐다고 한다. 명품의 리셀(되팔기) 시장 가격이 급락세를 보이면서다. 샤넬 핸드백의 리셀가는 최고점이던 작년 12월에 비해 10% 이상 떨어졌다.

이 배경엔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 정책 이후 가속화한 글로벌 자산시장의 위험 회피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리셀 시장의 가격 추락은 차액을 노려 오픈런에 뛰어든 리셀러들에게 직격탄이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팔리는 이른바 리테일 제품 수요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명품 소비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미국 경제학자인 하비 라이벤스타인의 ‘스노브 효과(snob effect)’가 있다. 스노브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 고상한 체하는 사람을 말한다. 과시적 소비 욕구를 의미하는 스노브 효과는 ‘속물 효과’와도 통한다. 실제 국내 오픈런 경험자를 대상으로 이유를 묻는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1.3%는 “구하기 힘들수록 괜히 갖고 싶어지는 심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차별화 본능을 파고드는 만큼 명품은 불황에 강하다. 과열됐던 명품 열기가 진정 기미를 보이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 경기 침체를 비웃던 명품 소비가 주춤하는 것이 전반적인 소비심리 냉각의 전조는 아닌지 우려된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