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용의 한류이야기] 공공외교 핵심은 소프트파워…그래미 시상식 연설 젤렌스키를 보라

소프트파워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소프트파워는 각 나라의 군사력이나 정치력을 강조하는 하드파워보다 영화나 음악 같은 대중문화를 발전시키고 각 국가의 우수한 문화 가치를 알림으로써 전 세계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소프트파워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서도 필요하지만, 한국과 같은 중·소 국가에 더욱 가치가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이들 국가와 맞설 수 없지만,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고양하고 이를 통해 각국 간의 외교·무역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을 의미하는 한류라는 소프트파워를 발전시켜왔다. 대중문화 상품 수출 규모는 1998년 189만달러에서 2020년에는 9396만달러로 50배나 급증했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과 같은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동시 방영되고,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는 등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급성장하고 있다. 정부 역시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영사관을 통해 K팝 경연대회, 한글 경진대회, 한식 시연회 등을 개최하는 등 소프트파워 확장에 노력하고 있다.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내고 소프트파워 개념을 만들어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작년 10월 한 콘퍼런스에서 “한국은 중국 등과 비교해 막대한 소프트파워를 가졌다”고 밝힌 바 있다.

[진달용의 한류이야기] 공공외교 핵심은 소프트파워…그래미 시상식 연설 젤렌스키를 보라

소프트파워는 한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한류 성공의 영향으로 일본과 중국도 소프트파워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은 2010년대 들어 ‘쿨 재팬’이라는 이름으로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 대중문화 발전과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도 하드파워만으로는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해 소프트파워 키우기에 한창이다. 중국의 상징인 판다를 한국과 일본 등에 임대하면서 중국의 이미지를 향상하려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소프트파워가 최근 들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대중문화가 문화외교, 더 나아가 정부와 민간 부문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공외교에 밀접하게 연계되고 있어서다. 소프트파워는 실제로 문화외교의 기초 단위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공공외교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미 시상식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영상으로 깜짝 등장, 음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호소한 것이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치열한 전쟁 중에도 대중음악과 대중음악인의 힘을 빌려 국가가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전 세계인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려는 모습이 소프트파워가 공공외교에 어떻게 연계되는지 잘 보여줬다.

소프트파워가 공공외교 정책의 핵심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민간 영역에서 우수한 문화를 만들어 해외에 전파하고, 국가는 필요한 정책과 지원을 통해 한류 콘텐츠의 생산과 확산을 도모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정부와 민간 부문이 늘 동시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는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 적절한 지원과 인프라를 제공하고, 민간 부문은 뛰어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면 된다.

그러나 소프트파워는 그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부가 한류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외형적인 전시행정에 매달리면 오히려 문화외교와 공공외교를 저해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한류 팬의 60% 정도는 아직도 한류가 2~4년 내에 소멸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류의 지나친 상업화와 정부 주도의 소프트파워 정책에 식상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따라서 한류를 발전시키고 이에 따른 소프트파워를 고양하기 위해서는 문화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국가 주도 정책의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문화 생산자가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대중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다.

진달용 사이먼프레이저대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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