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尹, 메르켈의 노동개혁 '승부수' 배워야
윤석열 대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해 6월, 출마 회견이 열린 다음날 기자들이 ‘구체적인 철학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질문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께 정치에 나서는 제 생각과 포부, 계획을 말씀드린 것이고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 어제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열한 달이 지났다. 윤 당선인은 수많은 현장을 방문했고, 산업·안보·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밑그림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물이 110개 국정과제에 담겼다.

인수위가 6일 해단식을 하고 50일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인수위는 별 탈 없이 정부 출범을 뒷받침한 데 만족하는 분위기다. 과거 인수위가 전 정권에서 일한 정부 관료들을 윽박지르며 불거진 ‘점령군’ 논란이나 언론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한 ‘불통’ 논란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새 정부의 비전을 보여줄 참신한 국정과제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인수위 안팎의 평가다. 당선인이 대선 기간 약속한 과제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뒤로 미뤄졌다. 당선인이 선거운동 중 가장 많이 꺼낸 단어 중 하나인 ‘강성노조’는 인수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노동계 표심을 의식한 듯 노동개혁 문제는 국정과제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연금개혁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정도의 내용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새 정부 조직의 큰 틀도 그려내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교섭 기능 조정 등의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뒀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인수위가 모두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한 것과 대비된다.

‘노동개혁’이라는 승부수를 던져 국정 동력을 살린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사례를 윤 당선인도 살펴볼 만하다. 메르켈 전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1%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실업률은 11%대로 치솟는 등 경제 상황도 나빴다. 그때 ‘노동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해 노동 탄력성을 높였고 노동자 파견 규제도 완화했다. 실업률은 줄었고 메르켈 전 총리는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0.74%포인트 차이로 신승한 윤 당선인에게도 자신만의 카드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