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고립 경제' 자초한 러시아의 헛발질
옛 작센 공국의 수도인 독일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에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능가하는 미술관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자기(瓷器) 박물관이 있다. 근교 마이센에서 18세기 초 유럽 최초의 자기가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해 보인다. 이 박물관의 특징은 16세기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자기 무역 흐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수집품을 시기순으로 전시해 놓은 점이다. 처음 수입된 것은 중국산 청화백자였다. 만주족이 중국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생산시설이 파괴되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에서 새로운 자기 수입처를 찾았다. 일본산도 처음에는 중국산과 비슷한 청화백자였지만 곧 화려한 색깔로 일본적 패턴을 그려 넣은 이마리 자기가 주류를 이뤘다. 중국의 정세가 안정되고 자기 수출이 재개됐지만, 유럽에서 일본의 채색 자기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한동안 이를 흉내 냈다. 그러다가 청이 신장을 정복한 뒤 그곳에서 나는 코발트를 이용해 제작한 완전히 푸른 자기가 이를 대체했다.

당시 자기는 지금의 반도체 이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었고 그 제조 기술은 최고의 산업 비밀이었다. 고려와 조선 그리고 조악하지만 베트남만이 제조 기술이 있었다. 유럽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었던 일본에도 제조 기술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기의 원료가 고령토라는 사실을 몰랐다. 고령토를 섭씨 1200~1400도로 오랜 시간 가열하면 변성되지만, 고령토에서 흰 자기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자기박물관에 조선에서 수입한 자기는 한 점도 없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때 도공들을 납치해 간 일본은 불과 50년 만에 중국산을 대체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의 기술을 확보했고 네덜란드인들에게 작으나마 무역 창구를 열어뒀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반면 철저히 쇄국한 조선은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이러한 역사에서 보듯이 세계로부터 고립된 경제는 낙오될 수밖에 없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이 그랬고 지금의 북한이 그렇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영토정복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도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함으로써 퇴행 길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것은 우크라이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미래도 함께 파괴되고 있다. 많은 인재가 러시아를 떠나고 외국 자본도 러시아에서 속속 이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7일 기준 최소 253개의 다국적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기로 했고, 248개 기업이 러시아 내 영업활동 중단을 발표했다. 러시아 경제의 후퇴는 불가피하다. 지난 4월 10일 발표된 세계은행 지역별 경제 전망 보고서는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11.2%로 예측했다. 현 상황이 계속되면 사정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이 아니다. 전쟁의 부정적 영향은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친다. 세계은행은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이 올해 역성장(-4.1%)할 것으로 예상했다. 두 나라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이하지만, 전쟁과 이에 따른 경제 제재로 무역로가 붕괴하고 해상운송 비용과 보험료가 올랐다. 공급 부족과 에너지 및 식량 가격 상승은 세계 각국에 영향을 준다.

문제는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제재의 유효성에 대해 그동안 많은 학자가 의문을 제기해 왔다. 게다가 러시아는 침공에 앞서 상당한 대비책을 마련했다. 일부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로부터 원유와 가스를 수입함으로써 경제제재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러시아인이 푸틴의 정책에 지지를 보낸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더 크게 올랐다. 초강대국 소련의 향수를 간직한 많은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세워줬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서방 국가들이 군사적 해결을 망설이는 한 전쟁은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많은 피를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인들도 비싼 자존심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전 세계인이 부수적 피해를 볼 것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