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사진)이 일본 종합상사에 투자한 지 2년도 안 돼 원금의 두 배를 벌어들였다. 글로벌 투자가들의 외면을 받던 일본 종합상사들도 덩달아 재평가받고 있다.
모두가 "도대체 왜?" 했는데…버핏, 日 종합상사 투자도 '대박'
세계 주식시장이 코로나19 충격으로 휘청이던 2020년 8월 31일 버핏은 “지난 12개월 동안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주식을 5% 이상씩 사들였다”고 발표해 전 세계 투자가들을 놀라게 했다.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는 미쓰비시상사와 이토추상사, 미쓰이물산, 스미토모상사, 마루베니 지분을 5.02~5.06%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외면받던 日상사주에 전격 투자

버핏이 일본 상장사에 투자한 건 당시가 처음이다. 버핏 투자 자산의 85%는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코카콜라 등 미국 주식으로 채워져 있다. 해외 기업 투자는 중국 전기차 1위 BYD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절삭공구 계열사인 IMC그룹을 통해 한국의 대구텍과 일본 탕가로이 등에 투자한 적이 있지만 모두 비상장사이고 소규모였다.

2020년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투자가 대세로 자리잡던 때였다. 종합상사와 같은 자원주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던 시기다. 자원이 주된 수익원인 종합상사의 수익과 주가는 모두 부진했다. 시장의 첫 반응도 ‘도대체 버핏이 왜?’였다.

하지만 버핏의 투자로부터 불과 1년8개월 만에 국제 원자재 가격은 급등세로 전환했다. 종합상사의 수익과 주가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버핏의 투자가 대박이 난 것은 물론이다.

2020년 8월 말 5대 종합상사의 주가는 640~2724엔이었다. 버핏은 5대 종합상사 지분을 5.02~5.06% 사들이는 데 563억~2167억엔씩 총 6700억엔(약 6조5817억원)을 썼다. 현재 주가는 1396~4304엔이다. 5대 종합상사 투자분의 평가금액은 1조1369억엔이다. 6700억엔을 투자해서 1년8개월 만에 거의 두 배를 번 셈이다. 마루베니에는 563억엔을 투자해 665억엔을 벌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 커져

버핏의 투자를 계기로 일본 상사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시즈메 고지 도쿄해상애셋매니지먼트 주식운용부장은 “상사주는 배당률이 높고 주가순자산배율(PBR)이 낮다”고 설명했다. 미쓰비시상사와 스미토모상사의 배당 수익률은 5.3%와 5.0%로 도쿄증시 상장사 평균(약 2%)의 두 배를 넘는다. 이토추상사를 제외한 4대 종합상사의 PBR은 0.7~0.8배에 그친다. 시가총액이 회사의 청산 가치보다 낮을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기 악화와 인플레이션이 병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종합상사주는 올해 일본 주식시장을 이끌 종목으로 꼽힌다. 종합상사는 원유와 석탄뿐 아니라 소맥, 동, 니켈 등 다양한 자원을 취급한다. 원자재값이 전방위적으로 오를수록 실적도 좋아진다. 구보다 마사유키 라쿠텐증권연구소 수석전략가는 “에너지 공급 불안이 당장 해소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상사주 주가는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치열한 日 ‘넘버1’ 경쟁

일본의 고도성장기 종합상사는 자국 경제를 이끄는 엘리트집단으로 각광받았다. 지금도 이토추상사는 매년 문과 졸업생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직장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상사맨들의 강한 프라이드와 치열한 경쟁의식도 유명하다.

‘일본 최강의 종합상사’를 가리는 경쟁이 단골 화젯거리인 이유다. 오랜 기간 일본 종합상사 ‘넘버1’은 미쓰비시상사였다. 매출은 10년 가까이 압도적인 1위, 순이익도 2016년 한 차례 적자를 제외하면 줄곧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20년 6월 2일 이토추상사의 시가총액(3조7649억엔)이 미쓰비시상사(3조6964억엔)를 처음 앞지르면서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원자재값이 급락한 2020년 생활 소비용품이 주력인 이토추상사는 순익에서도 자원 중심의 미쓰비시상사를 4년 만에 꺾었다. 원자재값이 급등한 2021년은 미쓰비시가 이토추를 근소하게 앞섰다.

이토추와 미쓰비시의 사업 구조는 ‘극과 극’이다. 미쓰비시의 순익에서 자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인 데 비해 이토추는 비자원 사업 비중이 80%다. 이토추는 2020년 7월 5816억엔을 투입해 50.1%였던 패밀리마트 지분을 100%로 늘렸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비자원 분야를 강화했다. 라이벌 미쓰비시는 편의점 부문에서도 자회사 로손을 통해 이토추의 패밀리마트와 경쟁하고 있다.

원자재값이 크게 오른 데 힘입어 일본 종합상사들은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순익 전망을 세 차례나 상향 조정했다. 지난 2월 미쓰비시와 이토추는 순익 예상치를 동일한 액수인 8200억엔으로 끌어올렸다.

이토추와 미쓰비시의 무승부로 끝나는 듯 했던 경쟁 구도는 미쓰이물산이 치고 올라오면서 뒤바뀌었다. 미쓰이물산은 순익 예상치를 3개월 만에 1200억엔 끌어올려 8400억엔으로 제시했다. 3파전의 승자가 누가 되든 일본 종합상사의 순익 기록이 새로 쓰여질 것은 확실시된다. 지금까지는 2018년 미쓰비시상사가 기록한 5907억엔이 역대 종합상사 최대 순이익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