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퇴임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는 대통령 주변의 특수관계자나 청와대·정부 인사, 이런 사람들이 부정한 금품을 받고 정권을 농단한다든지 부당한 이권, 특혜를 준다든지 이런 일이 전혀 없었지 않았느냐”며 “아직 재판 중이지만 그것도 직권 남용했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사건 등을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은데, 국기문란의 중대범죄에 대한 그의 법 인식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문 대통령과 절친한 송철호 현 울산시장(더불어민주당)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당시 시장이던 김기현 후보(자유한국당)에게 비위 혐의를 씌워 경찰 수사를 지시하는 등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게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요지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수사한 김 후보의 측근들은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고, 수사를 밀어붙인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현 민주당 의원)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선거개입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 지연, 핵심 인사들에 대한 석연찮은 불기소 등 여전히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는 이 사건을 ‘직권남용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월성 원전 사건은 또 어떤가. 무리한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경제성 평가 자료를 조작했음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졌고, 감사에 저항해 자료까지 폐기했음이 드러났다. 이를 어찌 직권남용 수준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겠는가.

문 대통령은 이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해서는 또다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잘못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 맞다 하더라도 결국은 우리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되고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 가족보다 국민에게 먼저 미안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춘풍추상(春風秋霜)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한 나라를 5년 동안 책임졌던 최고지도자의 법 인식과 연민마저 이렇게 선택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