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제국' 몰락할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 규모의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평평하고 탁 트인 지형에서 대규모 교전은 러시아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결과도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용기와 명석한 전술, 서방의 무기 지원 등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또 다른 굴욕적인 후퇴를 겪을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번 전쟁이 돈바스, 몰도바 지역에 있는 친러 세력의 붕괴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결속력 강화, 그리고 종합적인 군사적 패배로 끝나는 것이다. 이런 결말은 개인적인 굴욕을 넘어 그의 정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와 이미지가 심리적, 전략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러시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다.

우크라전쟁, 러 역사 바꿀 것

러시아 이전에도 이런 역사적 심판의 순간을 맞이한 제국들이 있었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스페인의 패배는 스페인 역사에 있어 분수령이었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시작된 스페인 제국주의 시대가 돌연 막을 내렸다. 1956년 수에즈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불명예스러운 실패는 그들이 더 이상 세계 강대국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제국의 영광은 끝났고, 초강대국 지위를 누렸던 두 나라는 고통스럽게 그리고 마지못해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응해나갔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결정적인 패배는 ‘모스크바의 수에즈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심장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다면 러시아인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수세기에 걸쳐 고통스럽게 재건한, 레닌과 스탈린이 복원한 차르 제국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다른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자기성찰을 강요당할 것이다.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푸틴 대통령 치하에서 러시아의 정치 사상은 세 가지 신념에 의해 형성됐다. 러시아는 다르다는 신념과 그 다름이 초월적으로 중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런 신념들이 세계 역사에서 러시아에 독특한 역할을 부여한다는 믿음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패배는 이런 신념들을 급속하게 약화시켜 러시아를 정체성 위기에 빠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푸틴, 패배 인정 어려울 것"

차르, 공산당원, 푸틴주의자들은 모두 러시아가 서방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고 본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모스크바는 서구의 퇴폐적인 부르주아 문화를 전멸시킬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채였다.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러시아가 서구의 퇴폐와 억제할 수 없는 탐욕에 맞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현재 문제의 핵심은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 없이는 러시아가 소련 시절의 초강대국 지위를 탈환할 수 있다는 꿈은 멀어질 것이다.

전쟁이 푸틴 정권의 내재된 어둠을 드러내고, 우크라이나에서의 만행이 카인의 낙인을 깊이 새겼으므로 러시아의 패배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영토 확장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 아무리 무자비하고 흉악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무기와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이다. 모든 무기와 수단이 바닥날 때까지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The End of Russia’s Empire?’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