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리만 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승자는 유럽이었다. 중국과 인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탄을 활용한 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글래스고 합의’를 끌어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란 명분을 쥔 유럽 국가들은 시종일관 당당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석탄 발전의 종말을 선고하는 획기적인 조약”이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내로남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던 석탄은 요즘 ‘귀하신 몸’이 됐다. 석탄 가격은 지난 3월 초 2008년 이후 최고가인 t당 45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지금도 연초보다 50% 이상 비싼 t당 260달러 수준을 유지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석탄 소비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탄 가격이 오른 이유는 복합적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기대만큼의 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유럽 주요국은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 사용량을 늘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줄자 대체재로 석탄을 찾은 것이다.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석탄 사용 확대는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는 데 따른 대가”라고 현재 상황을 요약했다.

유럽 국가들의 행보를 ‘내로남불’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지구 온난화를 막겠다고 ‘블랙아웃’(대정전)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의사결정의 유연성이 자국에만 적용된다는 데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장벽을 높이고 있다. 역외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탄소 배출량이 역내 제품보다 많을 때, 배출량 차이만큼 세금을 물리는 게 CBAM의 골자다.

지난해 발표한 초안의 대상 품목은 철강과 전력, 알루미늄 등 5개였다. 하지만 최근 공개한 수정안엔 유기 화학품 등 4개 품목이 추가됐다. 유럽에 해당 품목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으로선 무역장벽이 한층 더 높아지는 셈이다.

미국의 움직임도 유럽과 비슷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새로운 기후공시 규정안을 내놓으며 공급망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scope 3) 공개를 요구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회사에 부품이나 소재를 납품하려면 탄소배출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다.

탄소중립은 무역장벽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명분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내세워 개발도상국을 배제하면 자국 혹은 역내 기업들로 구성된 경제 블록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항변하면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내세우면 된다.

ESG가 경제 블록화 촉진

한국은 글로벌 경제의 블록화가 진행될수록 손해를 보는 나라임에도 탄소중립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COP26에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공언하는 등 공격적인 탈탄소 드라이브를 이어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2030년 NDC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신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정부가 ‘완장’을 차지 않는다고 해서 탄소중립을 비롯한 ESG 이슈를 가볍게 볼 기업은 없다. ESG 열등생으로 분류되면 자금 조달은 물론 글로벌 납품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굳이 정부가 기업들에 무거운 짐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새 정부가 규제 중심의 탄소중립 정책을 인센티브 중심으로 바꾸고 기업들의 애로를 해소하는 데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