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정건전성 회복 서둘러야 하는 이유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학계의 우려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재정건전성 문제는 핫이슈였다.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에 가까워 국가부채비율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뜬금없는 주장까지 나왔다.

현재 우리의 국가부채는 안전한가? 아마도 “그렇다”가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전례 없는 급등에도 불구하고 국가부채비율은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이고, 국가신용등급 등 부도위험 관련 시장지표도 양호한 모습이다. 아직은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안전할 것인가? 확답은 어렵지만 확률적으로는 “아니다”가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국가부채비율과 국제 금융시장의 생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 국가부채비율의 단순 국제 비교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며 국가부채 안전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국가부채비율은 평균적으로 신흥시장국에 비해 상당 폭 높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선진국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된다. 왜 그럴까? 이런 평가의 배경에는 선진국의 국가부채 감당 능력 혹은 국가부채비율 상한(debt limit)이 신흥시장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논리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부채 감당 능력이 커 많은 빚을 무리 없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채비율 상한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면 국제적으로 낮은 국가부채비율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재정건전성 강화는 부채비율 상한을 높이거나 적어도 하락을 방지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둘째, 국가부채의 안전과 관련된 국제 금융시장 지표들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며 시장의 신뢰는 조그만 불안 요인에 의해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그리스 국채 수익률은 독일 국채 수익률을 평균 10%포인트 웃돌았다. 그러나 유럽통화동맹(EMU) 가입 이후 2009년까지 독일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그리스 국채가 투자자들의 환상에 힘입어 억지춘향격으로 안전자산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2010년 급작스럽게 발생한 그리스 국가부도는 국제 금융시장도 오판할 수 있으며 시장의 신뢰 역시 하루아침에 증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평상시에도 국가부채비율 상한을 상당 폭 밑도는 수준에서 부채비율을 보수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안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경제의 장기 전망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장기 전망과 인구 감소 전망을 결합하면 국내 경제 잠재성장률이 2030~2060년 중 0.2%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계산이 나온다.

초저성장과 인구 고령화가 동시에 발생하는 극한 상황에서는 적자 기조의 고착화, 국가부채 급증 및 이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즉, 재정건전성을 조기에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국가부채는 장기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그 피해는 지금의 청년세대와 미래세대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될 것이다. 장기 전망이 부정적이라면, 향후 5~10년은 안전할 것인가? 재정건전성 회복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과 실물경제 환경 모두 국가부채 안전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 압력이 확산하고 있고 당초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과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며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금리 상승과 성장 둔화는 국가부채비율 상승을 가속화하는 최악의 조합이다.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 피해보상 등을 위한 재정소요도 잠재적 부채 증가 요인으로 대기 중이다. 재정건전성 회복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침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재정건전성 회복을 제시했다.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