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년 제자리'인 투자개방형 병원
“영업의 자유에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는 행정행위는 헌법상 기본권 존중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법원이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내국인 진료 제한’ 조치를 위법으로 결론 내리면서 제시한 판단 근거다. 제주지법이 지난 5일 이같이 판결했을 때만 해도 녹지병원은 조만간 ‘국내 1호 투자개방형 병원’이란 타이틀과 함께 개원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12일 또다시 개원 허가 취소를 결정하면서 개원이 요원해졌다. ‘헌법상 기본권 존중의 원칙’이 투자개방형 병원 허가에는 적용되지 않느냐는 논란이 벌어지는 대목이다.

법에도 없는 규제 내건 제주도

투자개방형 병원 제도는 20년 전에 마련됐다. 김대중 정부가 2002년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에 처음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제주특별법을 통해 제주에도 허용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설립된 투자개방형 병원은 전무하다. 송도 국제병원이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추진됐지만 한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공공의료, 의료복지’를 외치는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미국 프레스비테리안(NYP)병원, 존스홉킨스병원 등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가 모두 손을 털고 나갔다.

녹지병원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중국 뤼디그룹은 778억원을 투자해 녹지병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2015년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았다. 2017년 준공을 하고 채용까지 끝냈다. 그런데 제주도는 법에 명시돼 있지도 않은 ‘외국인 전용 진료’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뤼디그룹이 개원을 미루자 제주도는 개설 허가를 취소해버렸다. 뤼디그룹은 소송에 나섰다. 법원은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고 지난 1월 최종 판결했다. 이어 이번에 내국인 진료 제한이 위법하다는 1심 판결을 냈다. 그럼에도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는 개설 허가 취소를 결정했다. 병원 부지와 건물이 제3자에게 매도됐고, 방사선 장치 등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세계적 추세

녹지병원 개설이 완전히 좌초된 것은 아니다. 제주도는 병원 측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 판단대로 녹지병원이 의료기관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개설 취소는 불가피하다. 반면 투자개방형 병원에 대한 오해나 편견으로 인해 취소 결정이 내려진다면 위법한 ‘영업의 자유에 중대한 제한’이 될 것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통상 ‘영리병원’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비영리는 선하고 영리는 악하다’는 식의 흑백논리로 공격을 받아 왔다. 의료법상 병원은 의사나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이 설립할 수 있다. 의사들이 수익을 가져가는 개인 병원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없으면서 유독 투자개방형 병원에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외부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 선진화 측면에서 중요한 이유다. 민간보험을 적용받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베트남 등도 투자개방형 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내국인은 투자개방형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식의 규제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다. 의료의 자유에도 ‘중대한 제한’이다. 한국의 의료 소비자들만이 좁은 선택지를 갖는 이유에 대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치권 그 어느 곳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 판단이 안 선다면 법원 주문대로 헌법 조문부터 찾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