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국가 부도 내몰린 '빚쟁이 나라'들
빚 앞에는 장사가 없다.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가 국가채무를 갚지 못해 그제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올해 갚아야 할 빚이 70억달러(약 8조6000억원)인데 곳간에는 19억달러(약 2조4000억원)밖에 없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 빚 상환을 중단하겠다”며 손을 들고 말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일차 원인은 코로나로 인한 관광 수입 감소다. 여기에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한 재정 적자와 외화 부족, 물가 급등이 겹쳤다. 경제난 타개를 명분으로 돈을 마구 찍어 돌린 ‘퍼주기’ 탓에 부작용이 더 컸다. 식품 물가는 지난달에만 30.2%나 뛰었다. 기름 부족으로 대중교통도 마비됐다.

더 큰 원인은 ‘중국 부채의 덫’이다. 스리랑카는 10년 전부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중국에서 빌린 돈 50억달러로 항구와 공항, 도로 등을 건설했지만, 빚을 갚지 못해 반토타항의 운영권을 99년 기한으로 중국에 넘기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도 국가 부도 위기에 빠졌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지난 10일에는 총리가 쫓겨났다. 이 나라의 부채도 2013년부터 중국과 벌인 도로, 철도, 송유관을 잇는 일대일로에서 비롯됐다. 빚쟁이 국가에 경제난이 겹치자 정권이 무너졌다.

스리랑카 옆에 있는 몰디브 또한 빚에 허덕이고 있다. 변변한 산업이 없는 데다 중국과 맺은 불공정 계약으로 대(對)중국 부채가 30억달러(약 3조5600억원)나 늘었기 때문이다. 수도 말레와 국제공항이 있는 훌훌레섬을 잇는 다리에 들어간 중국 자본만 2억달러다.

이들 국가의 비극에는 ‘고리대금업’으로 변질한 중국의 사업 방식과 국가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 포퓰리즘 등이 함께 깔려 있다. 스리랑카는 IMF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 요구를 감당할 힘도 없다. 이 와중에 정권 퇴진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 입구를 점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채무가 지난달 1000조원을 넘어섰다. 5년간 늘어난 나랏빚이 340조원에 이른다. 지금도 1초에 302만원씩 늘고 있다. 1분에 2억원, 하루에 2600억원씩이다. 이렇게 채무를 늘리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인들이지만 빚을 갚는 건 결국 국민이니 가슴이 먹먹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