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래를 도둑맞은 아이들
줄리아는 어린 자녀와 함께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왔다. 그날 입고 나온 옷과 부츠 그대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왜 가는 거예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차마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었고 대신 “여행을 가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줄리아는 이 여행을 끝내고 가족이 다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우크라이나 분쟁이 발생한 지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지난 3월 30일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피란민이 400만 명을 넘어섰다. 400만 명이라는 수치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1분에 82명꼴로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는 것을 뜻하고, 피란민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인데,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국경 지역 난민임시보호소에서는 매일매일 피란민이 모여들고 있다.

일곱 살의 키라도 할머니, 엄마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 소중한 가족이자 지금의 유일한 친구인 반려견과 함께 난민보호소에 도착했다. 키라 역시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왜 여기에 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저 장난감과 반려견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엄마와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이 위기는 줄리아와 키라의 가족처럼 이 사태에 아무런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예고 없이 다가왔다. 정든 집과 좋아하던 장난감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고, 눈발이 날리는 거리를 추위와 공포에 떨며 걸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에게는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고 어린 시절에 모든 아동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언제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 그 미래조차 알 수 없다. 아이들은 오늘의 삶도 미래의 삶도 모두 도둑맞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위기는 분쟁이 발생한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 구석구석, 아마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식량 위기라는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가장 굶주린 사람들을 더욱 심각한 빈곤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특히 예멘, 콩고, 에티오피아 등 식량 수입과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에는 매우 치명적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4500만 명이 기아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 중 58만 명이 이미 기아와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연료, 비료, 운임 비용을 증가시켰으며, 빵, 쌀, 식용유 가격이 잇따라 상승했다. 월드비전과 같은 구호단체들은 엄청나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구호 물품을 조달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분쟁으로 인한 나비효과는 정말 끔찍하다. 이를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더 큰 비극일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아이들의 유년 시절과 미래를 되찾게 하는 일, 우리의 관심과 연대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비록 그들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