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난지원금 '복기'가 필요하다
2년 넘게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전망에 그간 위축됐던 경제가 활력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코로나 기간 각국 정부는 초유의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야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부족했던 점을 되짚어 추후 비슷한 재난이 닥쳤을 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은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일일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보편적 선별적 지원 여부는 계속 논란이 됐다. 대개 불황은 어느 특정 산업과 직업군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침체를 야기한다. 이에 반해 코로나 불황은 일반적 불황과 달리 특정 산업과 직업군에 집중됐다.

첨부된 그림은 숙박·음식점업, 예술·스포츠·여가업, 금융·보험업 등 세 개 업종의 코로나 기간(2020년 1분기~2021년 4분기)에 생산(부가가치기준)과 고용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x축은 코로나 발생 시점(2020년 1분기) 대비 생산의 변화율, y축은 고용의 변화율이다. 먼저 숙박 및 음식점업을 보자. 고용과 생산은 코로나 발생 시점 대비 각 12%와 30%까지 하락 후 회복 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 발발 이전 대비 -8%, -17%를 보인다. 예술·스포츠·여가업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생산은 무려 40% 가까이 하락했으며 코로나 발생 시점 대비 여전히 -25%다. 반면에 금융·보험업의 경우 고용은 다소 하락했다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바로 회복했으며 생산은 코로나 이전보다 오히려 15% 넘게 증가했다. 즉 코로나 기간에 금융 보험업은 호황을 누렸다.

[다산 칼럼] 재난지원금 '복기'가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의 소비진작효과에 관한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 포럼에 게재된 김미루·오윤혜 박사팀의 연구 ‘1차긴급재난 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이 소비 증가로 이어진 부분은 30%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참고로 경제학자들의 재난지원금의 한계소비성향 추정치는 0.5 내외다). 거리두기 등 경제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사용이 소비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는 재난지원금이 상당 부분 소비로 이어졌으나,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는 재난지원금 지급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소비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필자를 포함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 사람들은 코로나 기간에도 소득은 크게 줄지 않았으며 소비는 감소해 결과적으로 저축이 늘어난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는 자산과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불황기의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항상 제외된다. 재난지원금 사용처에 관한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위는 생필품 구입, 2위는 집수리, 3위가 주식 투자였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가계는 바로 생계비로 사용했지만, 재택근무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집수리 비용이나 가구 구매에 사용한 경우도 상당했고, 가격이 급락한 주식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은 자영업자 지원 규모를 전년도 세금보고와 매출을 기준으로 삼았다. 평소에 성실하게 세금을 신고한 자영업자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영세 사업자들의 형편이 더 어렵겠지만 사업장 규모가 크면 그만큼 고용 인원도 많았을 것이다. 다만 지원금은 임금 지급에 우선 사용하게 하고 신규 설비 투자에는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용 안정을 도모했다. 미국에서 자영업을 하는 지인은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정부에 고마운 마음도 들고 앞으로도 성실하게 세금을 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책 효과는 그 상황을 해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도 영향을 준다. 경제 주체들은 오늘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기억하고 이를 미래 행동에 반영한다. 정책 설계 시 인센티브와 동기 부여를 늘 검토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한정된 재원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중해서 더 넉넉하게 지원하는 것이 다음 세대의 재정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 마지막 남은 고비를 극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