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기자간담회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재확인한 자리였다. 이 장관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일각에서 ‘총체적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합당하지도 않다”며 “계속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과정”이라고 했다. 또 “한반도 정세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전쟁위기와 군사적 긴장은 보다 완화됐다”고 자평했다.

우선 이 장관이 무슨 근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하지 않았다고 자신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발표한 ‘베를린 구상’에 기초한 것으로, 남북한 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북한은 한국의 대선이 있는 올해만 모두 12차례 무력 도발을 자행했다. 그 결정판은 지난달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였다. 북의 ICBM 도발이 4년4개월 만이었으니, 문 정권 초기의 핵 긴장관계로 원점 회귀한 것이다. 이런데도 한반도 정세가 안정 관리되고, 전쟁위기·군사적 긴장도 완화됐다고 하니 어디 딴 나라 갔다 온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다.

장관의 생각이 이러하니 부처의 인식 또한 아마추어적이긴 매한가지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입을 통해 남한이 대결을 선택할 땐 핵무력으로 괴멸하겠다며 핵 겁박을 노골화하고 있다. 또 선제타격 가능성을 시사한 서욱 국방장관을 향해선 “핵보유국에 대한 선제타격은 망상이다. 진짜 그야말로 미친놈의 객기”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가 내놓은 입장은 “엄중하게 인식 중”이라는 것이다. 핵공격과 군대 괴멸, 전멸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저 “잘 알겠다”는 취지의 한가롭기 그지없는 외교적 수사를 갖다 붙이고 있는 게 우리 통일부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김여정이 ‘삶은 소 대가리’라고 조롱해도, 미사일을 펑펑 쏴대도 고구마처럼 침묵한 문 정부의 5년 대북 굴종은 북에 핵개발 시간만 벌어준 안보 재앙의 시간이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 과정으로 종전선언에 매달린 것도 결국 북의 가짜 평화쇼에 놀아난 것으로 판명됐다. 이 장관은 새 정부에 대한 조언이라며 “보수정부에 대한 예상에서 벗어나 역발상으로 평화를 위해 정책을 펴달라”고 했다. 핵 위협을 받는 나라의 장관이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