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치 양극화 심각…'네 가지 민주주의'로 국민통합 이뤄야 [김상준의 민주주의를 보는 눈]
입력2022.04.05 17:40
수정2022.04.06 00:06
지면A29
한경 DEEP INSIGHT
(1) 대통령, 설득 통해 '타협 민주주의' 추구해야
(2) 양당제 고착화…연정 어려운 韓 정당정치
내각에 초당적 인사로 '합의 민주주의' 모색을
(3) 미국 전문가주의, 정책의 정치적 왜곡 막아
정권에 안 흔들리는 '역량강화 민주주의' 필요
(4) 시민사회 통합 조건은 '자기제한 민주주의'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 민주주의도 양극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에는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특수성이 있으며, 그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고,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갈등은 이스라엘, 미국과 같은 수준의 최고 등급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은 종교, 미국은 인종 갈등이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인종, 종교, 언어 등의 원초적 균열이 존재하지 않는 동질성이 매우 높은 사회다. 어떻게 동질사회에서 이질사회 수준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일러스트=추덕영 기자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질사회에서는 정치적 동원을 위한 방법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아자와 타자에 대한 확연한 구분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선택된 방법은 타자를 정략적으로 지목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아자를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를 비롯한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bipolarization)’가 등장한 이유다. 지난 선거에서는 지역 이외에도 젠더, 세대, 집값, 안보 등 다양한 요소가 투표를 결정했다. 결국 정치 양극화는 사회의 하부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여러 대립축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대립축마다 양극화가 나타났다.
이렇게 치열하고 조각나고 불안한 정치 지형에서 국민 통합은 간단하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고 인사를 잘하면 통합될 것이라는 생각, 정치는 협상이니까 야당과 협상을 잘해나가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특정 정책으로 통합을 유도하려는 생각 등은 모두 한계가 있다. 분열과 대립의 범위가 넓으며, 불안정의 이유가 근원적으로 ‘젊은 민주주의’가 갖는 미완의 민주주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보다 넓은 시야에서, 민주주의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운데 국민 통합을 위한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통합을 위한 네 가지 민주주의를 살펴본다.
대통령, 설득과 ‘타협의 민주주의’
첫째, 대통령 본인이다. 권력 분립의 대통령제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다양한 선거를 통해 여러 목소리가 반영된다. 대통령제에서는 이러한 여러 목소리를 ‘국민의 소리’ 차원에서 듣고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전방위적 ‘통합의 힘’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대통령이다. 그리고 통합의 힘이란 결국 ‘설득의 힘’에서 나온다. 대통령은 헌법상의 많은 공식적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협상하고 절충하고 타협하면서 협치를 이뤄내는 것이 성공적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대통령을 최고 권력기관보다 ‘최고의 조정기관’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증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 나가고 설득하고 영감을 주고 신뢰를 만들고 인재를 끌어들여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의 업무 추진력과 태도는 국민 통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미국의 한 연구는 대통령의 업무 추진을 적극과 소극, 업무 태도를 긍정과 부정으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만 업무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긍정적 태도로 업무에 임했지만,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소극적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긍정적이며 또한 적극적이었다. 2020년 갤럽 통계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뽑혔다. 국민은 밝고 긍정적이고, 동시에 많은 일은 하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국민의 ‘순응비용’은 줄어들고, 대신 통합의 정도는 높아간다.
다른 한편, 국민들은 통합을 위한 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비록 1위를 했지만 재임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대부분 두 번째 임기에서 인기가 하락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대통령은 바로 2위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라고 하겠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재임 기간 8년 동안 꾸준히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유는 냉전으로 어려운 시기, 밖으로는 자유 진영을 이끌고 안에서는 중도 노선을 선택해 소위 ‘역동적 보수’라고 불리는 길을 걸으면서 초지일관 ‘타협의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에는 여러 모습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빛이 나는 것은 바로 정권의 민주적 이양이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이룩했지만 정권 이양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제는 정권의 ‘부드러운’ 이양이 요구된다. 정권의 부드러운 이양은 현직과 당선인 두 대통령이 힘을 합해 국민에게 던지는 통합의 메시지다. 이는 단순한 국정업무 인수인계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정당을 불문하고 현직 대통령이 당선인에게 개인적 편지를 보냄으로써 협력의 관행을 제도화했다. 임기를 마치며 국익 차원에서 경험한 개인적 훈수가 녹아 있으며 협력을 위한 전향적 자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정치, 협치와 ‘합의 민주주의’
둘째, 정치 영역이다. 다수결 민주주의는 다수가 지배하고 소수가 반대하는 구조다. 적어도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민주주의 측면에서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선호가 다수에 의해서 이성적으로 고려된다면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민주주의는 작동한다고 하겠다. 바로 협치가 필요한 이유다. 대통령제는 협치가 제도적으로 어렵다. 대통령 선거로 단번에 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에서는 연정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면서 정당 차원의 협치, 즉 ‘합의 민주주의’를 이룩한다. 하지만 영국과 같이 내각책임제지만 연정이 드문 경우도 있다. 이는 양당체제 때문이다. 영국을 ‘웨스트민스터 민주주의’라고 따로 부르는 이유다. 대통령제에 양당제가 겹치게 되면 연정은 더더욱 어렵다. 미국이 이런 경우이며 우리도 기본적으로는 이에 해당한다.
정당 차원의 합의민주주의가 쉽지 않은 영국, 미국, 한국 모두는 제도적으로 승자독식의 성격을 갖고 있다. 승자독식은 패자의 대표성이 전면 차단되는 비민주적 측면이 있으며, 이는 사실 정치적 갈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정부 구성 단계에서 초당적 인사로 협치를 모색하는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존 바이든 대통령까지 14명의 대통령이 116명에 이르는 다른 당의 인사를 장관 또는 행정부 요직에 임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각에서 일하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을 위한 적임자가 필요했고, 게이츠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일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게이츠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장관으로서 정당이 다른 두 대통령과 일하게 됐다. 오바마의 제안은 당시 안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지만 이는 화해와 통합을 위한 새 대통령의 선의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협치는 미국 정당체제가 가지는 여유로움에 기인한다. 미 의회에서 법안 의결 시 자기 당 법안에 대한 소속 의원의 지지는 대략 70% 정도에 그친다. 의원들이 우선순위는 각자 다르겠지만 의정 활동에서 지역구 이익, 정당 이익, 국익 등을 동시에 고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닫힌’ 정당체제를 갖고 있다. 중앙당의 공천, 항시적 당 조직, 집권적 당 지도부, 결속력이 강한 당원 등을 중심으로 정당이 운영된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경직화된 정당 관계를 초래한다. 우리는 제도와 조직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우리 사회를 장기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기본가치가 반영된 것을 제도라 하고, 그렇지 않고 수단적 속성을 가진 것을 조직이라고 한다. 정권 획득의 수단이라는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된 한국 정당은 제도보다 조직의 성향이 강하고, 결국 정치 양극화를 증폭시킨다.
다행히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는 인종, 언어, 종교에 대한 원초적 균열이 두드러지지 않은 동질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K문화의 성공에 다 함께 열광한다. 문화적 동질성 때문이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는 원초적, 사회적 균열을 극복하기 위해 고도의 정치적 노력을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우리는 마음만 잘 먹으면 협력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정당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국가, 전문가주의와 ‘역량강화 민주주의’
셋째, 국가 영역이다. 국가 정책은 갈등을 조장하거나 통합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적지 않은 국민이 정책 결정이 정파나 이념에 의해 왜곡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갈등은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해결은 간단하지 않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위험하다. 포퓰리즘이 대표적인 예다.
19세기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는 선거 후에 정치적 배려로 정부 일자리를 챙겨주는 소위 ‘정치적 후견제’가 뿌리 깊게 자리했다. 관행은 자성적 개혁으로 근절됐다. 후견 관행을 국가 후진성의 근본요인으로 간파하고, 국가 관료는 시험을 통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세기에 들어와서 전문가주의가 관료제에 정착됐다. 전문가주의는 미국의 실용주의와 어우러지면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첫째, 전문가주의는 정책 합리성을 바탕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특화된 정보와 지식을 통해 문제 해결 중심으로 업무수행 범위가 확장됐다. 셋째, 행정 능력의 향상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의 업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행정 관료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대통령에 복속됐지만, 대통령도 자신의 업적을 위해 전문가주의에 의존한 것이다. 전문가주의란 결국 소극적인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공익과 국익을 추구해 정책의 정치적 왜곡 내지는 이용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관료는 일본 관료와 비슷하게 고시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면서 업무수행 행태는 전문적 역량보다 관리적 역량이 중심이 됐다. 그 결과 행정 수반에 대한 복속도가 매우 높은 가운데, 정책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조정, 수정, 대안 제시를 하는 전문성, 즉 정책의 완결성을 높이는 내부 기제는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요동치는 이유다.
사회, 공동선과 ‘자기제한 민주주의’
넷째, 사회 영역이다. 국민 통합은 오래된 숙제다. 독일은 19세기 게르만 민족주의로 통일 분위기를 조성했다. 건국부터 이민자들에 의해 시작돼 민족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미국은 애국이라는 단어로 통합을 기도했다. 하지만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같은 외피적 처방은 내부 정치 경합이 유발한 분열을 극복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재 필요한 것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조정을 통해 통합을 이룩하는가다. 우선 ‘공동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숙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토론마저 시작하기 힘든 상황, 또는 토론을 하면 할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통합 자체가 중요한 공동선이 됐음을 암묵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19세기 노예제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는 ‘언급 자제’ 규칙이 미 의회에 등장했다가 표현의 자유 침해 이유로 사라졌다. 하지만 홈스라는 정치학자는 대립이 첨예한 현대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언급 자제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무리한 주장,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동은 삼가면서 타협이 쉬운 분야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에서의 화해와 통합은 정치화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정치가 다수와 소수, 또는 적과 동지로 분열하는 기제로 작동한 것이다. 정치의 속성에는 원래 경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경합은 정치 영역에 가둬져야 하고, 그때 시민사회는 보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소모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소통에 있어서도 자제의 요소가 필요하고, 정치 영역이 시민사회를 ‘식민화’하지 못하게 제한적이어야 한다. 통합을 위해서 ‘자기제한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정치를 너무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치가 지나치게 격화된지도 모른다. 정치학자 엘스터는 예술, 과학, 운동, 체스와 같이 정치도 참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가 있다고 했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수 있으며, 오늘은 이겼지만 내일은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정치는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 김상준은
비교정치, 국제정치, 정치경제 영역에서 정치 메커니즘을 비교 분석하는 학자이며, 동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 업그레이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연세대, 일본 게이오대, 미국 시카고대에서 비교정치, 일본정치, 국제정치, 정치경제를 공부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 대외협력처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지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민주주의, 사회 이중구조, 메커니즘의 정치학, 일본 정치, 동북아 국제관계 등이다.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장면 정부까지 전력산업은 통합과 분할, 공영화와 민영화라는 긴 논쟁 끝에 5·16 군사정부에서 한국전력으로의 단일화 및 공영화 정책을 수립했다. 한편 2000년대 초 정부는 발전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과 석탄발전 5개사로 분할한 뒤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매각 불발로 중단된 뒤 2050탄소중립 시대를 맞게 됐다.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분산전원이라는 전력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았다. 따라서 석탄발전 5개사를 재통합해 원가 절감과 질서 있는 퇴출을 하고, 그에 따른 인력은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1887년 3월 6일 밤, 명성황후 시해(1895년) 장소로 잘 알려진 경복궁 안쪽 건천궁의 백열전등에 불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점화된 것이다. 중국 자금성과 일본의 궁성보다 2년이나 앞섰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견한 지 8년 만에 서울에 전등이 켜졌으니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조선정부는 외교 사절단(보빙사)의 미국 파견(1883년)을 계기로 전력산업의 발전방향을 직접 체험하고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갑신정변(1884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으나 1887년 에디슨의 대리인인 프레이저로부터 전등설비를 구매해 건천궁에 750개의 백열전등을 밝혔다.이렇게 전등은 일찍 밝혔으나 정작 전기를 본격 생산할 한성전기회사는 10여 년이 지난 1898년에 설립된다. 아관파천(1896년) 전후 중국, 일본, 러시아의 경쟁적 이권 개입에 고심하던 고종은 이를 탈피하고자 자신의 개인자금 10만원과 미국 차관 10만원으로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러일전쟁(1904년) 승리 후 일본은 노골적으로 이를 뺏고자 했고, 결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1909년 8월 일한와사㈜에서 인수하게 된다. 이후 1930년대 초 한반도 전역에 무려 63개의 전력회사가 영업할 정도로 전력산업은 양적으로 성장했다.그러나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남한은 극심한 전력난을 겪게 된다. 해방 당시 발전능력은 북한 88.5%, 남한 11.5%였지만, 남한의 화력발전은 북한의 수력발전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발전 실적은 95.7% 대 4.3%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남한으로의 송전마저 중단했다.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장면 정부를 거치면서 수력과 화력발전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어느 정도 수요는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 3사(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의 지속적인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이 꾸준히 논의됐다. 구조조정은 두 방향에서 논의됐다. 3사를 한 회사로 통합할지와 국·공영화 대 민영화가 쟁점이었다. 치열한 논쟁 끝에 장면 정부는 한 회사로의 통합과 민영화 방침을 세웠으나, 곧이어 등장한 군사정부는 1961년 7월 1일 3사 통합 및 국영화한 한국전력주식회사(한전)를 발족시켰다.(오진석 《한국 근현대 전력사업사》 1898~1961) 민영화냐, 국·공영화냐 수십년간 논쟁한전은 이후 1978년부터 원자력발전을 추가하면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일반 국민에게 고품질의 전력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한편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민영화 정책에 따라 1989년 한전 주식 21%를 국민주로 매각했다. 그리고 1994년 7월 ‘한국전력공사 경영진단반’을 구성해 한전 민영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1999년 1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기본계획에 따라 2001년 4월 2일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사(한국수력원자력, 남동·동서·중부·서부·남부발전)로 분할했다. 그리고 발전부문을 경쟁시장으로 하는 전력거래소(도매시장)를 개설했다. 또한 민영화 추진 일정에 따라 1차로 남동발전 매각을 발표했으나(2002년 9월 7일) 투자수익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유찰됐다. 이후 모든 매각 일정은 차질을 빚었다. 배전부문도 당초 2004년 5~6개사로 분할한 뒤 2008년 12월까지 민영화한다는 게 기본계획이었으나 중단됐다.한편, 한전 발전부문 분할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전력산업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2050 탄소중립에 따라 현재 37%(269.6백만CO2eq)인 발전부문의 이산화탄소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분산에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2050년이 되면 전기 수요는 지금의 두 배(1215TWh)로 늘어나게 되는데 송전탑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적용돼 최적화된 에너지 사용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재생에너지 활용률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시프트(탄소중립, 분산전원, 산업융합)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배전부문의 분할 및 민영화를 통한 경쟁적 전기요금체계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한국경제신문 2월 16일자 DEEP INSIGHT 참조) 脫석탄 가속…전력산업 개편 적기그러면 전력산업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라 발전부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발전부문은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분할’했으나 이제 매각은 중단됐고 오히려 탄소중립을 위해 노후 발전기를 철수하고 있다. 애초의 분할 목적이 상실됐으므로 당연히 원복(한수원+석탄발전 5사 통합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원복하더라도 바뀐 패러다임을 활용하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기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한전은 지난해 11월 탄소중립 비전 ‘ZERO for Green’을 선포해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문제는 석탄발전 퇴출을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발전기별 퇴출 기준을 투명하게 정하고 그에 따른 직업 전환도 예측성 있게 해줘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발전 5사가 분리된 상태보다는 통합 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발전기별 퇴출 순서는 설계 수명, 경제성, 환경성(발전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 송배전 여건, 지역 편재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되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에 따른 직업 전환도 마찬가지다. 협력사(비정규직) 직원의 직업 전환도 보장해주고 예측성을 높여줘야 한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건설하고, 재생에너지도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발전 5사에 분산된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합 추진해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 사업은 석탄발전소 퇴출에 따른 직업 전환과 연계해서 체계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근무자가 언제 어느 곳으로 옮기게 되고, 따라서 본인은 어떤 직업전환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투명하게 결정하고 예측성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전 5사를 통합해 퇴출과 전환을 체계성 있게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석탄발전소 퇴출과 LNG발전 신규 가동에 따른 전환배치가 소진돼 2024년부터 예상되는 일자리 쓰나미는 배전부문 분할 및 민영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발전 공기업 ‘방만 경영’ 바로잡을 기회다음으로 이 같은 통합 과정이 발전사업의 잘못된 경영 행태를 바로잡고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도록 해야 한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발전소의 김용균 씨 죽음을 계기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구성됐다. 특조위 보고서를 보면, 민영화를 전제로 수직분리한 외주화가 어떤 효과를 이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초 한전에서 발전, 송배전, 판매사업을 일괄 수행하고, 정비사업은 한전 자회사(1차 협력사)인 한전KPS가 독점 수행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사업도 한전 자회사(1차 협력사)인 한전산업개발이 도급을 받아 수행해 왔다. 그러나 2001년 민영화를 전제로 한 발전사 분할 이후 생산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1차 협력사 주관으로 추가로 공개 입찰이 됐다. 문제는 비용 절감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발전사가 협력사에 지급하는 도급단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하청 협력업체들의 미숙련, 저임금, 불안전 고용은 늘어났고, 그 대표적인 사고가 김씨의 죽음이었다. 특히 운전업무는 전형적인 사내하청으로 실질은 파견관계(불법파견)였던 것이다. 도급단가의 지속 상승으로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은 상장사 평균(6%)의 배가 넘는 15% 수준을 보였는데, 이 기간 인건비는 원계약서 대비 50%만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협력사주의 고수익은 모두 소비자가 부담한 것이다. 당초 명분과 달리 비용은 상승시키면서 미숙련, 저임금, 불안전 고용은 방치하는 외주화는 발전사 통합을 계기로 원복시켜야 한다.발전사 통합이 미래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계기성은 ‘신입사원부터라도 직무급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동일 회사 다른 임금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인건비 총액을 직무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하고, 노동자는 자신에게 맞는 직무와 근무조건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정규직 없이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숙련,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대재해의 많은 요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통 부족에서 일어나는데, 직무 선택을 자원해 입사할 경우 출신성분(소속신분)에 따른 배타적 집단 형성을 해소할 수 있다. 입사와 동시에 직무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지금의 호봉제는 바뀐 생태계에 맞지 않는 임금체계라고 할 수 있다. 직무 간 이동성을 높여주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고임금 업무로의 이동 욕구도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근무시간도 주 52시간 획일제에서 벗어나 요일별, 시간별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따뜻한 복지이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진정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적자 나도 보상…정책 손질해야통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비용 절감이다. 당초 발전사를 분할해 경쟁시키면 수익성 창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01년 구조개편 설계대로 발전사 간 경쟁이 이뤄져 전력 도매시장이 형성되고, 배전분할이 이뤄져 판매 경쟁을 통한 소매시장이 형성되면 소비자 효용도 올라가고 가격도 인하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이러한 시장기능(가격신호)은 자원배분의 합리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발전사 분할과 동시에 중단됐고, 전기요금은 총괄원가주의에 따라 무조건 한전의 모든 비용(배당금, 법인세, 적정이윤을 포함한 비용)을 보상해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 발전사들은 원가 절감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특조위 보고서에 따르면 발전원가의 80~90%를 차지하는 연료비가 글로벌 단가를 웃돌고 있다. 종전에는 통합구매로 구매 파워가 있었으나 분할 이후 경쟁구매로 연료 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협력사의 과도한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분할로 인한 발전 5사의 중복되는 인건비와 간접비도 아무런 규제 없이 전기요금에 그대로 반영된다. 고위 퇴직자들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 회사에 재취업하는 품앗이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하고서도 소비자에게는 콩값(연료비)보다 두부(전기) 값이 싸니 전기요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총괄원가주의에 따라 달라는 대로 다 주게 돼 있는 구조가 현 전기요금 체계다.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분산전원 실현, 이를 위해서는 전력산업과 4차 산업혁명의 융합은 피할 수 없이 같이 가야 할 길이다. 이 길을 가는 데 극복해야 할 에너지 전환과 직업 전환의 허들은 발전 5사 통합, 배전부문 민영화와 연계해 정의로운 전환과 미래 준비가 싱크로나이즈되도록 하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은현대제철 기획실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화학공학,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 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오너 경영인을 보좌하면서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다’라는 그들의 철학을 배우게 됐다. 이런 배움과 회사 업무를 통해 접한 에너지·환경·안전·노사·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을 갖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위원(2013),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2020)을 지냈으며 한국ESG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발표했고, 저서로는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 40대는 ‘낀낀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5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놓인, 앞과 뒤가 다 막혀 있다는 의미다. 낀낀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다. 그 기원은 1990년대 초·중반 신세대의 개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신세대 개인주의는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낀낀세대의 미래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비관론은 586세대의 장기적 영향력으로 낀낀세대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낙관론은 이들의 미래가 이제 시작하고, 586세대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아우르는 교량적·포용적·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지난 3월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두드러진 것은 지역투표와 세대투표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투표 못지않게 세대투표가 우리 사회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세대투표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들에서 세대투표의 구도는 2030세대 대 5060세대 간 대결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의 구도는 4050세대 대 6070세대 간 대결로 드러나고 있다.구체적인 자료를 보자. 3·9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30세대에선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4050세대와 6070세대는 뚜렷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윤 후보는 60대에서 32%포인트, 70대에서 41.4%포인트 차이로 이 후보를 앞선 반면, 이 후보는 40대에서 25.1%포인트, 50대에서 8.5%포인트 차이로 우위를 점했다.이들 가운데 나의 관심은 40대에 있다. 투표 결과를 지켜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40대다. 진보라고 하면 이제까지 ‘5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났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50대)’를 떠올렸다. 이 586세대 역시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하는 ‘연령 효과’를 보여 온 반면, 언제부터인가 지금의 40대가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꼽혀 왔다. 40대,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유사 586세대’라는 점이다. 1960년에 태어났지만, 1979년 대학에 입학했고, 2년 전 60대에 들어섰다. 아래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40대 외부에서 40대 내부를 바라본 사회학적 관찰과 분석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90년대 초 ‘X세대’로 불렸던 ‘자유의 아이들’우리 사회에는 각 세대를 지칭하는 개념이 있다. 앞서 말한 586세대도 있고, 널리 쓰이는 MZ세대도 있다. 그런데 40대를 부르는 세대적 명칭은 없다. 그래서 3년 전 한 심포지엄에서 나는 ‘낀낀세대’라는 명칭을 제안한 적이 있다. ‘낀낀’에는 5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놓인, 앞과 뒤가 다 막혀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이 낀낀세대는 20대였을 때 ‘X세대’로 불렸다. X세대라는 말의 기원은 서구에서 왔다. 작가 더글러스 쿠플랜드는 자신의 소설 《X세대》에서 새롭게 등장한 젊은 세대를 ‘X세대’라고 명명했다. ‘X’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앞선 냉전세대나 히피세대와는 다른,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탈권위적 의식을 갖고 있었고 소비문화에 익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을 중시했다.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 세대를 ‘자유의 아이들’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벡에 따르면, 자유의 아이들의 등장은 현대사회 발전에 내재한 불가피한 흐름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도래는 개인화 경향을 강화시켰고, 이는 다시 개인주의 가치와 정치를 확산시켰다. 자유의 아이들은 한편에서 소비와 욕망에 관심을 두지만, 다른 한편에선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결정을 중시했다.우리 사회에서 X세대와 자유의 아이들의 다른 이름이 ‘신세대’였다. 현재 40대에 있는 이들은 1990년대 초·중반 뜨거웠던 ‘신세대 논쟁’을 기억할 것이다. 논쟁의 불을 댕긴 것은 1993년 미메시스가 발표한 책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였다. 그 부제는 ‘더 이상 탄원은 없다, 돌파하라’였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위선주의를 거부하고 신세대의 새로운 감성 및 문화를 옹호했다.사회학자 박재흥은 이 신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개인주의·탈권위주의·감성주의·소비주의를 제시한 바 있다. 이 경향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신세대가 드러낸 개인주의 성향이다.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신세대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 했고,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충실하려 했던 첫 번째 세대였다.무엇보다 신세대는 산업화 세대의 반공주의는 물론 586세대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념적 구속성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 대신 이들은 개인의 감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로부터 결코 작지 않은 세례를 받았다. 이 점에 착안해 나는 신세대를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로 명명한 적이 있다. ‘한국적 자유의 아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주목할 것은 20대 신세대론이 부상한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다. 이 배경은 구조적 측면과 주체적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구조적 측면으로는 대내적 민주화와 대외적 탈냉전이 중요했다. 신세대에게 민주화는 낡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탈냉전은 과도한 이념주의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지녔다.한편 주체적 측면으로는 선배 세대인 586세대와의 차이가 중요했다. 1990년대 대학에 입학한 세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시기에 청소년 시절을 보낸 만큼 소비와 욕망에 익숙해져 있었다. 또 민주화가 가져온 정치적 개방 속에서 성장한 만큼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문화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군부 권위주의 시기에 청소년 시절을 보낸 586세대와는 다른 사회화 과정을 경험한 세대가 바로 신세대였다. 두 가지 특성 ‘진보적 정치성향과 개인주의’40대의 사회학적 관찰에서 신세대론을 주목하는 까닭은 이들의 ‘망탈리테(mentalit)’에 있다. 망탈리테란 프랑스 역사학자 그룹인 아날학파가 주조한 말이다. 특정한 시대의 개인들이 공유한 집단적 사고, 생활양식, 무의식을 포함한 심성을 뜻한다. 우리 사회처럼 사회변동이 급격히 진행되는 곳에서는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망탈리테가 존재할 수 있다. 이 망탈리테를 주목하는 까닭은 집합적 사고·생활양식·심성으로서의 망탈리테가 개인 및 집단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다.이런 망탈리테의 형성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의식이 획득되는 20대의 체험이다. 낀낀세대의 망탈리테 한가운데는 1990년대 초·중반 신세대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에 성취한 민주화의 가치에 공감하면서도 그 엄숙하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거부했다. 앞에 있는 586세대가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뒤에 있는 2030세대는 민주화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이들은 생각한다.낀낀세대의 이런 망탈리테가 처음부터 고정화돼 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망탈리테는 신세대의 개인주의를 핵심으로 간직하면서도 이후 사회변동에 대응해 변화해 왔다. 그 과정을 보면, 신세대의 개인주의는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성립된 이른바 ‘9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경제원리로 삼았지만, 이 신자유주의는 시장에서의 개인의 경쟁력을 특권화시키는 ‘시장적 개인주의’를 강조했다. 이 시장적 개인주의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압박을 강제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감성적 개인주의’와 결합해 낀낀세대의 복합적 내면을 구성하게 했다.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1990년대로부터 시간이 흘러 2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본 낀낀세대의 내면풍경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특성을 주목하고 싶다. 첫째, 이번 대선 결과에서 볼 수 있듯, 낀낀세대는 정치적 차원에서 진보적 성향이 가장 강한 세대다. 연령 효과를 고려할 때, 낀낀세대 역시 앞으로 보수화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진보적 성향이 매우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둘째,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낀낀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개인주의를 지지해 왔다. 40대는 다른 세대보다 본인의 학력과 노력을 중시한다. 이런 경향은 586세대, 2030세대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다. 젊은 시절 내면화한 신세대의 개인주의가 낀낀세대의 망탈리테에 여전히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낀낀세대의 이런 특성은 이 세대의 실체에 가깝게 다가서게 한다. 젊은 시절 품게 된 감성·사유·세계관은 나이가 들면서 변하지만, 동시에 쉽게 퇴색하지 않는 도장의 붉은 인주처럼 선명히 각인돼 있다. 오늘날 낀낀세대의 내면세계는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동시에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신자유주의를 인정하는 동시에 경쟁지상주의를 비판한다. 낀낀세대에게는 여전히 개인주의가 도도하게 저류(底流)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셈이다. 586과 MZ 양쪽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 기대낀낀세대의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먼저 비관론은 낀낀세대가 586세대의 장기적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주도적 세대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주목해 비관론적 견해는 낀낀세대가 586세대와의 경쟁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586세대와 낀낀세대는 그 놓인 자리가 달랐다. 586세대가 민주화 시대를 열었던 것에 비해 낀낀세대는 외환위기로 인해 생존을 추구해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는 과정에서 이미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586세대와는 달리 낀낀세대는 고용 위기 등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 낀낀세대의 상처는 이중적이다. 97년 체제의 등장으로 인한 경제적 좌절의 상처가 하나라면, 586세대의 장기적 영향력에 따른 사회적 적응의 상처가 다른 하나다. 이 점에서 낀낀세대는 ‘상처받은 개인주의 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한편 낙관론은 낀낀세대가 앞으로 맡을 역할을 주목한다. 586세대의 역할이 길었던 것은 평균 수명 증가가 가져온 사회활동 연령 연장에서 찾을 수 있다. 586세대의 역할이 마감하는 현재, 낀낀세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시기는 바로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무릇 역사에서 시간을 이기는 세대는 없는 법이다.현재 낀낀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리더십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것인지의 과제다. 낀낀세대는 민주화의 가치를 공감한다는 점에서 586세대와, 개인주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MZ세대와 통한다. 끼어 있다는 것은, 발상을 달리하면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두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그리하여 통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점에서 낀낀세대에게 부여된 과제 중 하나는 점증하는 세대갈등에서 이런 교량적·포용적·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세대 문제는 어느 사회든 뜨거운 쟁점이다. 누구든 특정 세대에 속해 있는 만큼 세대 이야기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귀 기울인다. 그러나 동시에 세대는 포괄적 개념이다. 세대 안에는 계급·이념·젠더 등의 균열이 존재하고, 이 변수들이 세대 변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그럼에도 최근 지구적으로 세대를 주목하는 까닭은 우리 삶의 변화 속도에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사회 변동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이런 흐름은 세대 간 사회문화적 차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세대문화·세대갈등·세대정치에서 볼 수 있듯, 이제 세대는 분명 사회 변화를 이끄는 동인의 하나다.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 낀낀세대는, 앞에 놓인 586세대와 뒤에 놓인 MZ세대와 비교할 때, 사회적 관심에서 대체로 소외돼 왔다. 분명한 것은 이제 이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할 시간이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40대가 양쪽으로부터 끼어 있는 것을 넘어서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교량적·포용적·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라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는1992년부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UCLA 사회학과 방문학자와 스탠퍼드대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센터 코렛 펠로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1995),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1999),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2007), 《시대정신과 지식인》(2012), 《세상을 뒤흔든 사상》(2017),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2020) 등이 있다. 4월에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편집한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 The Threats of Illiberalism, Populism, and Polarization》을 출간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를 분석한 저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칠 파장의 가늠자는 서방의 대(對)러 경제제재다. 양날의 검인 대러 경제제재로 러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편 주요 20개국(G20)은 제재라는 울타리 양편으로 나뉘었다. 제재 참여 이유는 단일한 안보 위기 대처인 반면 불참 이유는 제각각 다양해 이를 냉전질서의 부활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이번 사태가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칠 영향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안보 논리의 대두, 경제 안보 중 에너지 안보의 부각, 보호주의의 진영화와 신뢰 가치사슬의 강화, 기능주의의 종언 가능성이다. 이 네 가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일대 도전에 직면했다. 초토화된 삶의 터전을 피해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은 28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 침공에 맞선 국제사회의 응징은 불가불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경제적 개입이다.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지난 2월 22일까지 총 2754건이던 대러 제재 건수는 3주 만에 3646건 폭증해 3월 14일 총 6400건에 달한다. 이란을 제치고 세계 최대 피제재국이 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를 선전포고라며 격앙했고 경제 보복을 다짐했다. 11위 경제 대국이자 에너지 강국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보복의 악순환이 초래할 세계 경제 대전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주요국과 국제기구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테러지원, 무력충돌, 인권침해 등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억제하고자 무역제재, 금융제재, 여행금지, 항공 및 해운 제재, 무기금수 등 다양한 경제제재를 사용한다. 핵무기 보유국 간의 ‘공포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면 글로벌화의 산물인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외엔 답이 없다. 경제제재 효과는 목표가 성취 가능한 것이고 장기간 지속되며 다자간 제재일 때 극대화된다. 파렐과 뉴먼이 지적하듯 제재가 장기간 오남용돼 제재국의 경제 네트워크에서 피제재국이 이탈해 버리면 향후 제재 수단이 사라지기도 한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미국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다양한 이해관계의 제재 동참국에 제재 손실을 보상해주고 광범위한 제재 연대가 가능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경제제재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모든 유형이 총망라된 대러 제재의 엄청난 화력에 러시아는 이미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금융제재의 화룡점정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 실패를 교훈 삼은 러시아 7개 은행과 자회사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이다. SWIFT는 200여 개국이 1만1000개 금융기관을 연결한 글로벌 금융결제통신망으로 하루 4000만 건의 메시지를 통해 거래되는 1조달러 중 러시아 관련은 약 1%로 추정된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로 인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4년 이후 러시아는 자체 국제결제시스템(SPFS)을 구축하고 탈(脫)달러화를 추진 중이나 여전히 대외거래의 55.7%는 달러 결제라서 출혈이 클 전망이다. 만일 러시아가 이를 중국판 SWIFT인 CIPS로 우회한다면 SWIFT 배제 효과와 달러 패권의 약화로 이어지는 반면 위안화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다. 서방은 중앙은행뿐 아니라 국부펀드, 정부기관과 국영기업, 민간 은행까지 자금을 동결하고 예금과 증권거래를 중단시켰다. 금융제재의 백도어가 될 6430억달러 외환보유액 동결도 빠트리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 국영기업의 EU 증권거래소 상장을 금지했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러시아를 신흥국(EM)지수에서 편출했다. 제재의 과녁에는 이례적으로 최고지도자 푸틴도 포함시켰다. 모든 유형이 총망라된 대러 제재무역제재 중 단연 주목되는 것이 에너지 관련 제재다. 천연가스와 원유 생산에서 각각 1위(25%)와 2위(12%)를 점하고 있는 에너지 강국에 유럽은 천연가스의 40%를 의존했다. 그러나 독일은 1230㎞에 달하는 독-러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개통 직전에 승인을 보류했다. 2022년까지 EU는 가스 수입의 3분의 2 감축, 영국은 원유 수입의 단계적 중단을 결행했다. 미국도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을 금지했다. 미국은 수출통제개혁법(ECRA)에 기반한 첨단기술 통제 시 해외에서 대러 수출품에 사용되는 미국산 기술과 소프트웨어, 장비가 10% 이상이면 이들도 규제하는 해외직접생산규정(FDPR)을 적용했다.제재 효과를 위한 국제 공조는 어떨까. 3월 2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한국을 포함해 압도적 다수인 141개국이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제재에 동참하진 않았다. 3월 4일 기준 G20의 제재 동참 현황을 보면 참여와 불참이 홍해처럼 절반으로 갈린다. 전자는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EU 한국 일본 호주이고, 후자(러시아 제외)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비G20 중 전자는 스위스 노르웨이 대만 싱가포르 뉴질랜드이고, 후자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옛소련국들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세계 경제가 두 동강 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참여 이유는 분명한 반면 불참 이유는 제각각이다. 경제제재의 지정학 명료하게 드러나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제재 참가국을 찍어 보면 경제제재의 지정학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EU에게 있어 이번 사태는 안보는 미국에,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해온 현실에서 번쩍 눈을 뜨게 한 각성제다. 중립국 스위스마저 금융제재에 나선 배경이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 아시아의 한국과 대만이 참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세계지도는 이들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말해준다. 아시아의 참여국은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가 예상국이기도 해 IPEF가 통상협력체 이상을 추구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 반대편은 △이념(중국, 북한, 시리아, 쿠바, 니카라과)이나 △중립 노선(멕시코, 인도네시아) 혹은 △대러 경제 의존(브라질, 아르헨티나) △군사 의존 및 미국 제재 회피(이란,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군사적 이익(터키) △산유국의 경제 실리(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하지만 불참국 중 가장 의외인 국가는 쿼드의 일원 인도와 미국의 최우방 이스라엘이다. 두 나라는 각기 자국 안보의 최대 위협인 중국이나 시리아 견제에 러시아의 지원이 긴요해 미국과 모종의 교감하에 불참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렇게 보면 불참 이유는 다양하나 냉전 후 잊혀진 듯했던 패자(者) 러시아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준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러 관계의 밀도는 세계 경제의 분단 여하를 가르는 최대 변수이나, 이 또한 중국의 복잡한 셈법이 있어 아직 유동적이다. 미국 견제를 위해선 EU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하고 ‘세기의 빌런’이 된 푸틴과 원팀이 돼 잃을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대러 제재는 러시아 경제부터 가격할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러시아 경제가 13%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에너지 수출이 막힐 경우엔 -20%까지도 내다본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내부로부터 동요가 예상된다. 그러나 대러 경제제재는 양날의 검인지라 세계 경제의 타격도 적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주가, 금리, 환율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금융지표가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강국일 뿐 아니라 밀, 옥수수 생산량이 많고 특히 전략물자 생산의 필수재인 티타늄 매장량은 세계 3위(13.5%)다. 36개국과 인접한 러시아의 하늘이 막히면 운임 상승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세계 경제는 금융 부문보다 실물경제에서 고공행진 중인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과 공급망 교란으로 심히 고전 중이다.로이터에 따르면 3월 11일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제재 직격탄을 맞은 에너지, 자동차, 금융, 항공해운 등 다국적 기업의 러시아 엑소더스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 경제사 초유의 사태다. 이들 중 특히 대규모 고정투자 사업의 중단은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그러나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 3월 7일 푸틴은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롯한 ‘비우호국’ 48개국에 대한 혹독한 경제 보복 조치를 장담했다. 철수한 기업의 자산은 국유화로 맞설 기세다.이상과 같이 우크라이나 사태는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대러 경제제재라는 앵글을 통해 이것이 향후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칠 변수를 추려보자. 경제제재는 언제나 양날의 검첫째,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안보 논리의 등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안보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전후 EU가 누린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은 이제 기대난망이다. EU의 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중은 1.5~2%인데, 당장 독일이 1.5%에서 2%로 올리기로 했다. 방위비 증가 도미노는 전 세계로 퍼지고 가뜩이나 코로나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시급한 사회경제 분야 지출에 여파가 미칠 수 있다. 각국은 안보 불안 불식을 위해 울타리 위에서 어느 쪽으로든 내려와 안보동맹 맺기에 나설 것이다.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치르게 된지라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은 기우일지 모른다. 다만 인도, 이스라엘같이 강대국과 확고한 신뢰 관계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까. 안보가 중시되는 한 국가는 더욱 전면에 부상할 것이다. 안보를 명분 삼은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자유주의 진영 내부로부터 질서의 균열을 낼지 모른다. 국가의 역량과 자질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만큼 권력의 견제와 감시 메커니즘의 작동 여부도 관건이다.둘째, 경제 안보의 맥락에서는 효율보다 회복력 중시 기조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에너지안보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전한 화석연료 의존현실을 절감한 나라들의 탈탄소와 탈원전의 공존 가능성이 실험대에 올랐다. 후쿠시마 대지진을 계기로 독일은 원전 의존도를 더 낮추기로 한 반면 프랑스는 오히려 75%로 올려 결과적으로 대러 의존도를 낮췄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보듯 대형 원전은 위험천만한 공격 대상이 됐다. 기후정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에너지안보는 백년을 내다보고 숙의를 거듭한 끝에 신중히 결정해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다.셋째, 경제 안보가 중시되는 한 글로벌화에 종지부를 찍고 보호주의의 진영화가 가속될지 주목된다. 코로나 발생과 미·중 전략경쟁을 계기로 이미 효율보다 안정성과 회복력을 중시하게 됐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대러 금융제재를 계기로 금융 분단, 에너지 분단, 기술혁신과 표준 분단 등 분단이 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자급자족은 아닌 것도 자명하니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뜻 맞는(like-minded) 우방끼리 규합하는 보호주의의 진영화가 촉진될 것이다. 이것이 투사된 공급망 재편이 미국이 주도하는 소위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 구축이다. 이중용도 기술품목의 GVC에서 위험국가를 배제하고 우방끼리 TVC로 재편하는 흐름도 강화될 전망이다.마지막으로, 기능주의도 종언을 고할까. 이번 사태로 서방의 시선은 자연스레 가치와 이념이 다른 중국을 위시해 위험국가로 향하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덤덤하겠나. 기능주의의 산증인 EU는 두 번의 전화를 겪은 뒤 항구적 평화를 향한 장대한 통합 여정의 시발점을 전략물자의 공동관리를 위한 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삼았다. 이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위시한 무수한 분열의 암초에 부딪혀 쉽사리 통합이 어려웠던 EU를 지금 똘똘 뭉치게 만든 건 경제가 아니라 안보 위기다. 같은 이치로, 중국과 상호의존성을 높여온 동아시아에선 안보 위기로 분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자 서둘러 ‘인도·태평양’으로 간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남북경제협력도 신북방정책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하다. 경제제재는 미국의 군사뿐 아니라 금융, 기술 패권도 입증했다. 그러나 대러 제재 장기화로 보호주의의 진영화도 TVC도 강화되면 그때도 경제제재가 힘을 발휘할까. 그만큼 미국의 쇠퇴는 가파르고 그나마(!) 전쟁의 참상을 최소화하는 경제제재조차 수명을 다하는 날 세계의 평화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암울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간이 또박또박 오고 있다.■ 김양희는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을 거쳐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대학을 휴직하고 국립외교원에서 개방형 직위인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으로 있다. 최근 보고서는 ‘21세기 보호주의의 변용, 진영화와 신뢰가치사슬(TVC)’(2022), ‘RCEP, CPTPP,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 지역질서의 분절화·진영화 우려와 대응과제’(2022), 논문은 ‘Interactions between Japan's weaponized interdependence and Korea's responses: decoupling from Japan vs. decoupling from Japanese firms’(2021), 저서는 《코로나 19, 동향과 전망》(공저, 2020), 《경제학, 2300년의 대답》(공저, 2022 발행 예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