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부 KCGI 대표가 지난해 4월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가 지난해 4월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선진화할 인수 후보를 찾았다고요? ‘주당 6만원’을 맞춰줄 후보를 찾았다는 게 더 솔직한 고백 같은데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의 한진칼 투자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CGI는 최근 보유 중인 한진칼 지분 전량(콜옵션 포함 17.41%)을 호반건설에 매각해 3년간 이어온 한진그룹 투자를 마무리했다. KCGI는 “기업 발전에 도움을 주고 경영진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때 견제할 수 있는 매수자에게 일괄 매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KCGI가 호반건설보다 먼저 지분 매각을 타진한 곳은 반도건설이었다. 반도건설은 한진칼 지분 17.02%를 가진 3대주주로, KCGI와 함께 주주연합을 구성해 한진칼을 상대로 표 대결을 벌였던 회사다. 반도건설이 KCGI 지분까지 인수하면 최대주주로 올라서 한진그룹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KCGI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호반건설을 새 협상자로 택했다. 결국 펀드 수익률에 맞춰 인수 후보를 결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출발은 원대했지만

[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국내 1호 행동주의 펀드 '절반의 성공'
2018년 11월 KCGI가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해 2대주주에 올랐다고 발표했을 때 자본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KCGI가 성공적으로 투자를 마무리하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전체 주주의 이익을 높이는 주주행동주의 투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당시 행동주의 투자의 타깃으로 한진그룹보다 좋은 투자처는 없었다. 한진그룹은 무리한 호텔 투자, 정석기업 등 개인 회사로의 일감몰아주기 등 취약한 지배구조로 한진칼 및 계열사들의 기업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런데다 ‘땅콩회항’ ‘물컵갑질’ 등 오너 일가의 도덕성 문제로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평소 행동주의 투자에 관심이 많던 강성부 KCGI 대표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분 매집에 나섰다.

이듬해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런 작고로 조원태 현 한진그룹 회장으로의 상속을 둔 갈등까지 겹치자 KCGI는 공세에 속도를 냈다.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지분 매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불운'과 '전략 미숙' 겹쳐

하지만 예상치 못한 악재가 이어지면서 KCGI의 한진칼 ‘캠페인’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쳤다. 국가 기반산업인 항공업을 재편한다는 명분 아래 산업은행 주도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한진칼 아래 한데 묶는 ‘빅딜’이 진행됐다. 산업은행은 한진칼이 발행한 신주를 인수해 새 주주로 참여했고, 조원태 회장 등 기존 경영진에게 회사 운영을 맡겼다. KCGI 측은 결국 산업은행과 협력해 조 회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겠다며 한 발 물러나야 했다.

업계에선 불운만 탓하기엔 운영상 미숙함도 적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한진그룹을 향한 비난 여론의 불씨가 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한진그룹보다 ESG 지배구조 등급이 낮은 반도건설과 연대해 만든 이른바 ‘3자연합’은 시장의 지지를 잃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결국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펀드 만기가 도래한 데다 매년 180억원에 달하는 이자 청구서가 날아오면서 KCGI도 선택의 시기를 맞았다. 업계에선 “투자자들에게 쫓겨 장내 매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란 평가와 “평판 하락까지 감수하며 낸 성과라기엔 인덱스펀드 수익률과 큰 차이가 없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KCGI의 한진칼 투자가 한국 자본시장에 남긴 명과 암은 뚜렷하다. 행동주의 투자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와 함께, 행동주의 펀드가 명분을 잃으면 언제든 시장에서 잊혀질 수 있다는 교훈도 남겼다. IB업계 관계자는 “KCGI가 한진칼 투자로 4년 만에 두 배 가까운 수익을 올렸지만 다음 ‘캠페인’을 내걸었을 때 호응할 투자자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