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잡한 통상환경 출현과 통상전략의 재구축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등장으로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는 글로벌 경제가 되면서 각국 서플라이 체인(공급망)도 글로벌 시대에 맞춰 구축돼왔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더 이상 자유무역이 유지되기 어려워졌고 WTO도 무력해졌다.

결정적으로 미국 트럼프 정권 출범과 더불어 미·중 간에 강한 무역 충돌이 야기됐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큰 규모의 대미 무역흑자를 내는 중국에 대해 철강 등의 제품을 중심으로 큰 폭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며 대미 수출 및 대미 흑자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미중 무역 갈등은 안보 문제까지 얽혀 각국이 친미와 친중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는 중국의 경제정책 운영이 순수하게 자유시장경제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강력한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이 중국 기업으로의 기술 이전을 강요받아왔고, 중국 기업의 대외 통상활동에도 중국 정부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이 대중 강경 태도를 보이는 데는 중국 정부의 민간 기업 개입을 배제할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겹쳤다. 2020년 초 발생 이후 2년여가 지난 오늘날까지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는 각국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고 세계경제 통상질 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상활동에 있어서 대면 활동보다 인터넷·디지털 등에 의한 비대면 활동이 큰 비중을 점하게 됐다. 이에 따라 각국의 서플라이 체인도 크게 수정되고 있다. 기존 통장질서 자체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26)를 들 수 있다. 회의에서 한국을 위시한 회원국들이 강력한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탄소중립은 국제 통상질서를 규제하는 강력한 변수로 등장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2030년부터는 내연기관차 수입을 막고 탄소 발생량이 적은 전기차만 수입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에너지의 경우 석탄, 원유 등을 연료로 사용할 때의 탄소 발생량이 많아 채굴을 억제하기 때문에 거래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력발전소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건설 중이던 원전을 중단시키거나 원전 가동률을 낮추는 등의 원전 폐쇄정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화 시대에 원전이 탄소 배출이 적을 뿐 아니라 생산단가도 저렴하다는 국제적 평가를 바탕으로 폐쇄에서 부활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탄소중립을 요구하는 강력한 국제적 환경은 일국의 산업구조를 엄청나게 변화시킬뿐 아니라 주요 원자재의 수요구조 및 수입처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가격체계의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은 수입이 제한되는 등 국제유통 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단기로 끝날지 장기화할지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중국·북한 등의 국가군(群)과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의 국가군 간 갈등구조가 형성됐다. 우리나라도 어느 한쪽의 국가군을 선택할 것을 요구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우리가 선택한 국가군과는 자유롭고 친밀한 통상관계가 이뤄지는 대신에 선택하지 않은 국가군과는 지금까지보다는 통상관계가 상당히 불편해질 것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같은 새로운 통상환경들의 출현으로 인해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되던 글로벌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통상활동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온 한국으로선 새로운 대응책 모색이 시급히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서플라이 체인의 재구축이 시급하다. 지금까지는 한국 기업의 생산 활동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을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제품으로 조달하는 식으로 국제 분업에 참가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구입선을 다양화해야 한다. 지난번 중국 요소수 수입이 어려워지자 호주, 베트남 등에서 수입했던 것처럼 주요 수입품들은 기존 수입처 이외에 대체수입처를 점검해 환경변화에 따라 즉각적 대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기존의 서플라이 체인에 대한 수정 및 새로운 접근과 관련해서는 가장 먼저 일본과의 협력관계 강화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시장경제권의 일원이며, 인접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경제의 대외지향적 공업화 과정에서 일본을 외부경제로 활용해 성장해 왔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핵심부품·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현 시점에서 한·일이 철저한 경쟁관계가 되면 피차 과잉경쟁이 돼 두 나라 모두 교역조건이 악화되지만, 협력하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측면이 많다. 따라서 양국 간 불협화음을 빨리 극복하고 협력체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이 한일 협력을 토대로 대만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식의 서플라이 체인 재구축이, 미국이 구상하는 경제권 속에 한국이 편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대중 통상마찰에 대비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은 ‘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IPEF)’라는 경제·안보 동맹체를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도 여기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이 동맹체가 잘 작동하면 최근 제기되는 일련의 통상문제에 정면 대처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으로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첨단기술개발 속에 파고들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 변화된 통상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 한국 기업의 기술적 우위가 계속 유지되면 다소의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 속에서 중국과의 교역도 여전히 지속되리라 예상된다. 요컨대 중국과의 교역은 중국의 선의가 아닌 중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중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적 우위 제품을 한국 기업이 계속 생산·수출하는 한 양국 무역은 지속될 것이다.

탄소중립화에 대한 국제적 요구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예상치 않게 구리·니켈 등 특정 원자재의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들 희소 원자재의 해외개발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지만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한국 기업 단독으로 하기보다는 리스크 분산 및 효율적 개발을 위해서 우리와 비슷한 필요가 있는 일본 기업과의 협력적 진출이 요망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기업이 기획력과 정보력, 자본력이 우수한 데 비해 한국 기업은 현장 순발력, 추진력 등의 우월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어 양국 기업이 협력해 동반 진출하면 그만큼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예기치 않은 여러 통상환경의 출현으로 세계경제가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되던 글로벌 경제는 사실상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외통상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이에 걸맞은 서플라이 체인 재구축과 새로운 통상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개발 등 일련의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