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반도체 전쟁과 통상
지금 지구에는 세 가지 큰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와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그리고 반도체 전쟁이다. 세상은 서로 촘촘히 얽혀 있다. 그래서 이들 전쟁의 여파는 지구 곳곳에 미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교역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도 이 흐름에 올라탄 덕분에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내수 시장의 협소함을 수출로 극복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환경은 변했다. 자유 무역에서 관리 무역으로, 그리고 자국 산업의 보호 정책으로 그 흐름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언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당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기업의 통찰력과 결단력 덕분에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전 세계 1등이다. 미국이 자국의 반도체 기업을 돕고 일본의 미국 진출을 막기 위해 맺은 1986년 미·일 간 반도체 협정은 결국 일본과 미국의 반도체 기업을 동반 쇠퇴하게 만들었다. 이 협정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기술 발전으로 반도체의 사용 범위도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의료, 통신, 자동차, 문화산업 등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서 반도체는 이제 필수품이다. 그래서 각국은 기를 쓰고 반도체 자립을 외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강국인 한국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의 참여를 원하고 있다. 중국 또한 한국의 반도체 기술과 인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중국은 이미 반도체 기술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미국도 늦게나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미국 상원에서는 무려 2400여 쪽에 이르는 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도 36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미국경쟁법(ACA)을 통해 반도체에 약 520억달러를 지원하려고 한다. 두 법안의 핵심은 미국 반도체산업의 복원이다. 일본이 반도체 법안을 재정비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가세해 전 세계가 반도체 지원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가 반도체 전쟁 중인데 정작 우리 국회는 아직도 국내 문제에 매몰돼 있다. 미국은 의회가 주도해서 반도체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통상 협상을 담당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반도체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을 주관하는 상무부가 중심이 돼 있다. 반도체 전쟁에서 기업과 정부, 국회는 원팀이 돼야 한다. 정치와 행정이, 그리고 민간과 정부가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반도체산업 정책과 대외 협상을 전담하는 통상도 한목소리가 돼야 한다. 통상의 핵심은 무엇보다 기업과의 소통이다. 정부와 국회는 반도체 전쟁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기업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한국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