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자유낙하 중이다. 1년 전만 해도 달러당 108~109엔 하던 것이 어제는 123엔까지 떨어졌다. 100엔당 1000원 선도 깨졌다. 달러 대비로는 6년7개월 만에, 원화 대비로는 3년3개월 만에 최저다. 미국 달러, 스위스 프랑과 함께 ‘세계 3대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기축통화 대접을 받던 엔화의 굴욕이다.

엔화는 위기에 유독 강한 통화였다. 일본의 넉넉한 외화 자산과 탄탄한 경제 기초체력을 배경으로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정반대 흐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자재 가격 급등 사태가 이어지자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표면적인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금리정책 때문이다. 미국 등 주요국이 정책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들어가는데 일본만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하면서 투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환율은 단순히 금리 차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이기 때문에 상대국 경제력이 강하면 어쩔 수 없이 약세를 보인다. 하지만 최근의 달러 강세, 엔화 약세는 미국보다는 일본 경제의 내재적 요인이 더 크다. 초고령화와 저성장, 코로나 위기 부실 대응, 세계 2위의 부채 비율, 17개월째 이어지는 경상수지 적자,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부진이라는 악재들이 엔화 가치에 반영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비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2년간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선방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력인 제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미래 성장산업을 준비해온 덕분이다. 하지만 기업 외적 분야를 둘러보면 지금 같은 국제신용등급과 경상수지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이션 부담이 이미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친노조-반기업 정책들이 상당 부분 법제화돼 투자 의욕도 예전 같지 않다. 코로나 확산과 대통령 선거 여파로 재정 건전성이 크게 훼손된 가운데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환율은 국민 실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지표다. 엔화의 고전을 남의 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는 엔화보다 훨씬 허약하다. 경상수지가 21개월 연속 흑자를 내는데도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에 머물러 있다. 가치를 의심하는 시선들이 제법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