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해 2분기 전기요금에 적용할 연료비 조정단가를 ㎾h(킬로와트시)당 0원으로 동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급등한 국제 유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막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3.8원으로 산정했으나 상한선에 걸려 3원 인상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마저 수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전이 입는 손실은 1조6000억원가량이다.

정부는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일리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4월 전기요금 동결 공약도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와 신정부 간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용지물이 된 연료비 연동제를 보면서 ‘이럴 거면 왜 도입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는 연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가격이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전기 소비자들이 요금의 향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12월 도입됐다. 연료가격이 오르면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2021년 1분기 조정단가를 0원에서 -3원으로 3원 인하했고, 2021년 4분기에 다시 0원으로 3원 인상했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109조원이던 부채가 지난해 말 146조원으로 불어났다. 이자 비용만 매년 2조원에 달한다. 증권업계에서는 국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되면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가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한전이 이렇게 부실화한 이유는 근거 없는 탈(脫)원전 정책과 함께 전기료 인상을 억눌러 온 탓이다.

한전은 국내 공기업을 대표하는 간판주자다. 한국은 물론 미국 뉴욕증시에도 상장돼 있다. 국내 정치적 사정에 의해 최악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한전을 보는 해외 투자자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국제적인 망신거리다. 정치논리에 묶인 전기요금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에너지가격 정책 결정에서 정치적 개입을 끊어내고 전력요금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이젠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