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박근혜의 미소…정치무상이다
지난 24일 병원을 나와 시민들 앞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4년9개월간 옥살이에 모든 명예와 재산을 잃었으며, 신원(伸)하고픈 억울한 마음들을 켜켜이 눌러놓은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이날만은 자유를 되찾아 홀가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대구 달성군 사저로 들어가면서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에도 지난 일들에 대한 원념이나 비탄, 지지자들을 향한 비장함 같은 것을 내비치지 않았다.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들이 있습니다. 제가 못 이룬 꿈들은 이제 또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 궂은 날씨에도 많은 시민이 사저에 몰려들었다. 주변 교통이 막힐 정도였다고 하니 그를 반기는 지역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사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금물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사망은 그 자체로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또다시 정치적 격랑의 한복판으로 소환해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온갖 영욕이 교차하는 박 전 대통령의 생애를 살펴보면 권력무상을 넘어 정치무상을 느끼게 된다. 탄핵 사태를 주도한 ‘촛불권력’은 어느새 임기를 다했고 새로운 권력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제 본인들이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양측의 인사 갈등에 그대로 묻어난다. 권력의 칼날은 쥐고 있을 때 그 예리함을 알지 못하다가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보게 되는 법이다. 피가 철철 나도록 서로 경쟁하고 싸우지만 세월은 누구에게도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숭배한다. 그래서 중세 교회권력만큼이나 억압적이고 잔혹하다. 상대를 짓밟고 죽여야 내가 산다는 야만적 생존술과 야수적 세계관에 휩싸여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온화한 미소는 온갖 풍상을 겪고 난 뒤의 것이기에 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 “사람이, 인간이 원래 이런 존재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 정치는 바뀌어야 한다. 권력 절대주의에 맞서는 인간성 회복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다. 마을 이장의 바람대로 박 전 대통령이 상처난 마음과 건강을 잘 다스리고 치유하기를 기원한다.

조일훈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