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어제 법무부 업무보고 직전에 일정을 전격 유예했다. 말이 유예지 사실상 거부다. 이유는 전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즉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 예산 편성권 부여’ 공약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일부 인수위원은 “곧 퇴임할 장관이 (당선인) 공약에 공개 반대한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 정부 출범을 한 달 반 앞두고 인사부터 업무보고까지 정권 인수·인계 과정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장관은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인수위와 협의해 조속한 시일 내 보고 일정을 다시 잡는 게 도리다. 현행 대통령직인수법(제12조)은 부처 장관들로 하여금 ‘인수위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자료와 정보 또는 의견 제출, 예산 확보 등 필요한 업무 협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각 부처에 정권의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업무보고 전날,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 인수위 운영에 차질을 빚게 한 것은 법과 대통령 지시를 어긴 부적절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장관은 작년 초에도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속도조절 당부’에 대해 “나는 장관이기에 앞서 집권여당 의원”이라며 반기를 든 적이 있다. 그때도 부처 장관이 국회의원 신분임을 앞세워 대통령 지시를 거스른 것은 헌법상 3권 분립 원칙에 어긋나고, 임명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란 점에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이번 경우도 장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그런 돌발 행동이 법무부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법무부 패싱’으로 해당 조직원들은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인수위에 부처 주요 현안과 요청사항을 부각시킬 기회를 잃게 됐다. 인수위와 관료사회 내부에서 “정권 인수·인계에 관한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각 부처가 인수위에 성실하게 업무보고를 하는 것은 법적 의무이자, 당연한 권리다. 일정이 연기된 법무부뿐 아니라 업무보고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여성가족부 등도 마땅히 고유 기능과 향후 개선 방향 등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설득할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