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것을 두고 벌어진 신·구 권력 충돌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애초에 진지한 협의 의지는 없었고, 내 편 결집과 상대 진영 공격 수단으로 삼는 고질적 병폐가 드러난다. 이견이 있더라도 부단히 타협점을 찾아가는 게 정치인데, 상대를 적으로 삼을 뿐 설득 기술도, 그런 노력도 찾기 어렵다.

여권을 보면 ‘벌떼 같다’ ‘꼬투리 잡았다’는 비판이 틀리지 않는다. 윤 당선인을 ‘그 양반’이라고 지칭하고, 레임덕에 빗대 ‘취임덕’이라고 조롱하는 등 최소한의 금도도 없다. 근거 없이 풍수를 거론하고 ‘대재앙’이라고 퍼붓는 것을 보면 안보는 명분일 뿐,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속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이러니 ‘대선 불복’ 논란까지 불거지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군 통수권자로 마지막까지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한 것도 그렇다.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안보를 이유로 청와대 이전에 제동을 건 것과 같은 선상에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안보 우려가 있다면 불식하는 방안을 찾으면 될 일이지, 물러나는 대통령이 당선인의 첫 공약 실행에 제동부터 거는 것은 볼썽사납다. 더욱이 대통령 자신도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을 두 번이나 공약하지 않았나. 청와대 수석이 어제 하루에만 다섯 차례 방송에 나와 여론전을 편 것도 지지층만 바라보는 외골수 행태다.

그렇다고 윤 당선인 행보가 전혀 문제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가 중대사를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줘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긴 게 사실이다. 용산 이전에 대해 여권 반발이 뻔했는데 얼마나 설득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의문이다. 이전 비용 등 청와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텐데도 그런 노력을 소홀히했다면 소통 리더십을 자신할 수 있겠나. “우회하지 않겠다”는 ‘마이웨이’ 태도도 ‘내 편’만 의식한 것으로 비친다.

5월 10일이면 민주화 이후 여덟 번째 대통령을 맞는다. 10년 단위로 좌우 정권이 교체됐고, 그때마다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사생결단식은 보지 못했다. 대선이 끝나도 진영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입으로는 통합을 외치며 돌아서면 진영과 정파 이익만 추구하는 편협한 정치 탓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린 의미를 존중한다면 이런 구태를 청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조속히 만나 허심탄회하게 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