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칼럼] 우리는 '아들'도 키우고 '딸'도 키운다
“농부는 꼭 아저씨여야 하나요?” 지난달 말 나온 초중생 경제신문 ‘주니어 생글생글’ 2호를 보던 초등학교 6학년생 딸이 했다는 말을 한 지인이 전해줬다. ‘옥에 티’라는 지적과 함께.

학교 급식이 어떤 절차로 만들어지는지 그림과 함께 설명한 기사로, 제목은 ‘농부 아저씨의 쌀이 학교 급식의 밥이 되기까지’였다. 아이들이 읽는 신문을 만들면서 표현이나 용어, 심지어 일러스트레이션의 손 모양까지 나름 신경을 쓰는데도 이런 실수(?)가 나왔구나 싶었다. 요즘 아이들의 ‘성평등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반장은 남학생, 부반장은 여학생’이었다. 누가 정한 규칙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요즘은 딸을 키우면서 여자라고 한계를 짓는 부모를 찾기 힘들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남녀 불문하고 성별이 ‘차이’일 뿐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주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20대 젊은 층에서 성별로 지지 후보가 확연히 갈린 점이다. 20대 이하 여성은 58.0%가 이재명 후보를, 33.8%가 윤석열 당선인을 지지했다. 반면 20대 남성은 58.7%가 윤 당선인을, 36.3%가 이 후보를 찍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던 이번 대선에서 예상보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것과 관련해 2030 여성들이 막판 이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원래 젊은 여성들은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성평등 의식은 높아졌는데, 사회에 나와 보면 여전히 남성 중심의 기성세대 논리와 문화가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20대 남성들은 기성세대의 가부장적 특권을 누리지도 못하는데 여전히 여성만 ‘약자’로 규정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 국민의힘은 이런 ‘이대남’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문득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을 돌아보게 된다. 그때는 여성들에게 ‘기회의 불평등’이 컸다. 그로 인해 경험과 성장은 제약됐고, 유리천장을 뚫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시대가 변했고, 지금은 어디든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다. 잘 버티고 살아남은 사람에겐 새로운 기회가 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좀 더 개선돼야 함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매년 최하위다. 여전히 남녀 임금 격차가 크고,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나 중간관리자 비율 등이 낮기 때문이다. 산모 사망률, 청소년 출산율 등을 포함하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성불평등지수(GII)’처럼 기준에 따라 한국의 순위(189개국 중 11위)가 높은 지표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 20여년간 빠른 변화가 있었고, 남녀 젊은이 모두 민감해하는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된다면 앞으로 유리천장은 좀 더 쉽게 깨질 것이란 점이다.

요즘은 어떤 이슈든 SNS나 유튜브, 심지어 언론매체를 통해 소수의 극단적 주장이 부각된다. 그러면서 갈등이 증폭된다. 선거 때 정략적으로 ‘갈라치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번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그랬다. 선거 목표는 승리겠지만, 권력을 잡은 다음엔 지지자뿐 아니라 반대편도 포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국민이 현 정부에 실망한 주된 이유 중 하나도 내로남불, 편 가르기였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젠더 문제와 관련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는 듯하다. 정부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 양성평등은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다. 아동과 청소년 보호 정책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국민의 절반은 여성, 절반은 남성이다. 그리고 아들을 키우는 사람도 있고, 딸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