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개 중대 전력' 스나이퍼
18세기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 사이에서 총으로 도요새(스나이프)를 잡는 경쟁이 유행했다. 이 새는 몸집이 작은 데다 날렵해 맞히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새를 잘 잡는 사람은 저격수를 뜻하는 스나이퍼로 불렸다. ‘일발필중(one shot one kill)’이 모토인 스나이퍼는 1,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을 거치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1차 대전 때 적 1명을 사살하는 데 총알 7000발, 2차 대전 땐 2만5000발이 소요됐는데, 저격수들은 평균 1.7발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있다. 저격수 1명이 1개 중대 병력에 버금가는 효과를 낸다는 분석도 있다. 군사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저격수는 핀란드의 시모 해위해다. ‘백색 죽음’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는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한 소련군에 맞서 90일 동안 공식 집계로만 542명을 사살했다.

소련 바실리 자이체프는 2차 대전 때 독일군 400명을 없앴고,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모델이 됐다. 스탈린그라드 박물관에 전시된 그의 소총엔 “오른뺨에 총을 밀착, 스코프 십자가에 목표물이 메워지면 방아쇠를…”이라고 적혀 있다. 미국 특수부대원 크리스 카일은 이라크전 때 255명을 사살했으며,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만들어졌다.

저격수 강국으로 우크라이나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2차 대전 때 활약한 여성 저격수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다. 키이우(키예프)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던 중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자 입대해 소총부대에 자원했다. 10개월간 독일군 309명을 저격해 ‘죽음의 숙녀(Lady Death)’로 불렸다. 소련은 부상한 그를 구하기 위해 잠수함까지 동원했다. 파블리첸코를 비롯해 수많은 우크라이나 저격수들이 전장에서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러시아 공수사단장이 지난 2일 우크라이나 저격수에게 피격돼 사망했다. 그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등 주요 작전에서 전과를 올려 훈장을 받는 등 승승장구한 장군이라는 점에서 러시아군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외신 보도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저격수를 집중 양성했고, 이례적으로 훈련 영상까지 공개한 바 있다. 선배 저격수들이 소련을 위해 총을 들었다면, 후배들은 옛 소련의 종주국 러시아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