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경제와 정치, 원리 다르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한 달을 넘겼다. ‘적용 1호’가 되지 않으려고 기업들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법률 효과에 대해선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한 달간(1월 27일~2월 26일) 수치이긴 하지만 전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총 42명으로 나타났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명 줄었을 뿐이다. 기업이 ‘선량한 관리자’는 물론, 이를 뛰어넘어 법률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실천하는 중에도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는 있게 마련이란 사실을 새삼 알 수 있다. 도급 관계에서 원청업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적잖이 나올 것이다. 이와 관련해 19일째 CJ대한통운 본사를 불법 점거하다 최근 점거를 해제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파업 사태가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기업엔 산재·특고 의무 늘리고

대한통운과 택배노조는 고용-피고용 관계가 아니다. 대한통운은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로서 대리점에서 일감을 받는다. 굳이 비유하면 도급 관계와 비슷하다. 문제는 택배회사가 일정한 근로 지시를 내리고 그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고용형태(특고) 근로자라면 노동자성(性)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현 정부 고용정책이었다. 택배노조는 이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계기로 대한통운 측에 택배료 인상분 배분을 둘러싼 협의를 요청했다. 대한통운의 항소에 따라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인데, 노조가 공권력의 미온적 대처를 예상하고 폭력 점거를 결행한 것이다.

산업현장 인명사고를 줄이기 위해 원청기업의 의무를 강화하고, 점점 늘어나는 특고 근로자의 권익을 배려할 필요성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둘러싼 여러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 있다. 그러나 원청기업과 특고 근로자를 쓰는 기업의 비용 증대, 형사처벌 위험 등 부담이 역대급으로 커지고 있는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선진국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수준의 의무사항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황제의전 '남 탓' 해서야

이런 입법을 강행하는 정치권은 과연 어떤지 돌아볼 일이다. 기업에 일방적으로 부담을 늘리고, 정치권은 여전히 ‘4류’ 관행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법인카드 불법 사용 등과 관련한 ‘황제의전’ 문제다.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이 “문제가 있다면 (갑질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이 공무원을) 그만뒀으면 됐다”고 ‘남 탓’을 한 것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택배기사들이 대한통운 일감을 받지 않으면 될 일이지, 웬 파업?’이라 반응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눈앞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직접 일을 시킨 적 없다” “이름도 모른다”고 여권 인사들이 강변했지만, 하청기업 산업재해에 포괄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을 떠올려보면 설득력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이 후보 장남이 병원에서 퇴원할 때 관용차를 불법 동원한 사실에 대해서도 민주당 선대위는 “잘못된 것은 맞지만, 이 후보는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또 한번 피해갔다.

남의 눈 속 들보만 보고 자신들의 퇴행 양상엔 관대한 ‘내로남불’로는 정치권이 4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단 이 후보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 주변을 황급하게 돌아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법 제정까진 아니더라도 사회관습법으로 황제의전, 공무원을 종 부리듯 한 공직자를 퇴출시킬 필요가 있다. 기업 노사관계, 경제 문제와 정치 이슈가 전혀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그 원리가 다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