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선거의 구축효과
세상은 항상 논리적 합리성만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악함이 선함을 내몰기도 하고, 추함이 아름다움을 압도하기도 한다. 유능한 인재보다 교활한 사람이 득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선거에서는 더더욱 그런 현상이 빈번히 발생한다. 논리적 근거보다는 개인적 편견, 공동체의 선보다는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는 허위 선동과 폭로가 난무하고, 비방과 흑색선전으로 경쟁자를 비하하며 유권자를 혼동시킨다. 이런 연유로 민주적 투표에서도 선량(選良)보다 선악(選惡)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이 오랫동안 되풀이되면 점차 훌륭한 인재는 정치권을 멀리하고, 오히려 ‘정치적’인 인물만 몰려든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셤의 법칙도 이런 경제 현상을 대변한다. 같은 1만원짜리 동전이라도 값비싼 금속으로 만들어진 동전은 장롱 속으로 사장되고, 저렴한 소재의 동전만 유통된다. 지폐도 새 돈은 지갑에 들어가고, 헌 돈을 주로 사용하지 않는가. 고액 신권이 나오자마자 사라지는 것도 모두 이런 현상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가치와 비교해 저평가된 통화는 오래 보유하지만, 과대평가된 화폐는 시장에서 유통해 버리려고 한다. 좋은 것은 간직하고, 그렇지 않은 것만 사용하려 하니, 악화에 밀려 양화는 유통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시중의 통화가 국채 매입으로 흡수되고, 이것은 다시 금리를 끌어올리는 현상도 구축효과라고 한다. 국채 발행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자는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역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중고품 시장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향이 많다. 예를 들어 2015년 쏘나타가 1900만원에 거래된다면 자신의 차가 이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소유주는 쉽게 차를 내놓지 않는다. 반면 어떤 이유로 내 차의 상태로 보아 1900만원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만 중고차로 내놓는다. 따라서 중고차 시장에는 좋은 차(양화)가 공급되기 어렵고, 과거의 사연이 있는 차(악화)만 넘쳐난다. 물론 차에 대한 정보를 구매자가 정확히 안다면 속지 않겠지만, 실제로 중고차일수록 차주와 구매자가 가진 정보의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 이렇게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좋은 품질의 양화를 찾기 어려운 경우를 레몬시장이라고 한다. 이 시장에서 양화를 선택하려면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 것도 레몬시장의 원리와 같다. 구축효과에 밀려 진실이 가려진 현실에서 양화를 찾으려면 후보에 대한 바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정한 양화를 선별하는 유권자의 수준이 바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선거에서 양화가 선택되는 과정이 정착돼야만 우리 정치권도 레몬시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