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래도 신약 개발이다
국내 바이오업계의 성장이 눈부시다. 많은 투자금이 몰리면서 의약계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대단히 크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은 바이오업계의 위상에 큰 우려를 낳고 있다. 20년 넘게 임상의사로 재직하다가 수년 전 바이오 벤처회사를 설립한 필자는 현 상황에 대한 필자만의 몇 가지 의견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예로부터 국내 제약회사는 해외 약물의 국내 판매와 복제약 생산·판매가 주된 사업이었다. 본연의 사업인 신약 개발은 1999년 이후로 한국에서 34개밖에 없을 정도로 척박한 상태였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 전부를 합쳐도 외국계 회사 하나가 개발한 신약 개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회사들도 자사 약물의 한국 판매에만 관심을 가질 뿐 한국 신약 연구개발(R&D)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반면, 요즘 우리와 경제적으로 대등하게 비교되는 일본은 다케다, 다이이찌산쿄, 에자이 등 여러 자국 회사가 해마다 수많은 신약을 쏟아내고 있어 한국은 사실 상대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2000년대부터 국내에서도 몇몇 선도적 회사들의 노력으로 신약 개발이 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자체 개발한 신약으로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하거나, 미국·유럽 시장에서 처음으로 품목허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바이오시밀러 영역에서는 세계적 성과를 내는 두 업체가 성장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 보여준 뚜렷한 성과는 주식시장의 붐으로 연결되면서, 이에 많은 신규 기업이 과거와는 다르게 신약 개발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이 와중에 들려온 임상시험 실패 소식과 선도 업체의 상장폐지, 몇몇 회사의 비윤리적 경영 사건은 투자업계를 놀라게 하면서 많은 이들이 과거 닷컴버블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한국 바이오산업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지금 상황은 원시적 수준이었던 신약 개발 사업이 산업계로 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산통이다. 이 고난을 거쳐야만 진정한 실력을 갖춘, 세계를 호령할, 미래의 신약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닷컴버블은 그 당시엔 비극이었지만 수십 년 뒤 IT 기업 전성기가 도래하는 데 충분한 자양분이 됐다고 본다.

사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우리나라 의과학 학계에는 세계적인 연구개발 인물이 많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의 실력이 산업계에서 쓰일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고, 외부에는 이들을 산업계와 이어줄 시스템도 부재했다. 이제 잠자고 있던 많은 바이오 인력이 뛰쳐나오는 순간이다. 지금은 이들의 옥석을 가리는 과정에서 조금의 시행착오를 겪는 상황일 뿐이다. 우리 모두 지금의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바이오산업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지지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