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안전, 노사 공동 책임이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틀 만에 삼표기업 양주사업장의 토석붕괴 매몰사고가 발생했다. 법 시행을 무색하게 한 사고였다. 2020년 국내 산재 사망자는 882명이며, 근로자 10만 명당 4.6명에 이르고 있다. 10만 명당 0.78명(2019년)인 독일 산재 사망자의 6배 규모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은 1년 이하의 자유형, 미국이나 일본은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국내에서 산재 사망사고를 이처럼 엄하게 처벌하고 있음에도 사망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산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기업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이어 원·하청 구조에 따른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원인으로 지목된다. 죽음 앞에서 누구도 변명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경찰과 고용노동부, 검찰로 이어지는 수사 과정은 사고원인 규명보다 사고책임자 색출 과정이 되기도 한다.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은 질타당하고, 경영자는 사과와 함께 사고 재발 방지 및 안전투자 약속을 하고, 사고원인 규명과 무관하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고, 누군가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정부와 기업, 노동단체, 여론도 모두 잊어버린다. 사고 원인의 정확한 규명과 동일 사고 발생의 예방이라는 정작 중요한 과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러기에 산재 사고는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10년 후에 판박이 사고가 발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산재 사고를 줄이려면 사고를 일어나게 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재 사고에 대한 패러다임을 ‘처벌에서 원인 규명과 예방으로’ 전환해야 한다. 법과 제도, 정책의 방향을 모두 바꿔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예방을 입법목적으로 하고 있으면서 입법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형사처벌’을 택하고 있다. 처벌은 결코 중대 재해를 예방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산재 예방이 노사 공동의 몫이며, 공동의 책임이 돼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본적으로 사업주에게 산재 예방을 위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근로자에게도 일부 부과하고 있으나, 위반 시 처벌 규정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하다. 2020년 근로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된 경우는 532건에 2128만원인데, 그마저 2018년에 비해 부과 건수 및 금액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근로자들이 법을 잘 지켜서라기보다는 과태료 미납 때 결손금 처리를 우려해 부과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업주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만큼 근로자에 대해서도 과태료가 아니라 선진국과 같이 형사처벌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산업안전에 있어서만큼은 노사가 공동의 책임 주체가 돼야 한다. 안전모 비치는 사업주의 의무이나, 안전모 착용은 근로자의 의무다. 근로감독관들의 산재 예방 활동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2021년 7월 1일 기준 근로감독관 정원 3122명 중 안전을 전담하는 산업안전감독관은 815명이다. 근로감독관 1인당 3289개 사업장을 살펴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효성 있는 예방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수치다. 사고 대응 방식도 바꿔야 한다. 여론몰이식 비난을 자제하고 위험의 외주화나 원·하청 구조에서 사고원인을 찾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거쳐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사고 예방을 위한 충분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산재 사고로 매일 2.4명의 근로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내세우는 ‘엄벌’만으로는 사고를 막지 못한다. 처벌에서 원인 규명과 예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그에 발맞춰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을 모두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위드(with) 산재’가 아니라 ‘바이(bye) 산재’에 가까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