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콘텐츠값 갈등 '강건너 불구경'하는 정부
작년 온라인 실시간방송 채널 블랙아웃(송출 중단)까지 치달았던 콘텐츠기업(CP)과 통신사 간 콘텐츠 사용료 갈등이 지난달 ‘봉합’됐다. 양측이 협상에 나선 지 약 1년 만이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작년 말 CJ ENM과 인터넷TV(IPTV) 콘텐츠 사용료 관련 합의를 했고, LG유플러스는 지난달에야 간신히 IPTV 공급가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CJ ENM과 LG유플러스는 지난해 끊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계약을 새로 체결하지 않기로 했다.

이쯤 되면 문제가 해소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다시 ‘갈등의 악순환’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사는 올해 콘텐츠 사용분을 놓고 똑같은 협상을 해야 한다. CJ ENM은 최근 각 통신사에 올해분 협의에 대한 공문을 보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지 한 달도 안 돼 또 비슷한 설전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각자 내세울 입장과 근거가 그새 크게 달라졌을 리 없다. 통신·콘텐츠업계 모두 올해도 작년과 똑같은 파열음을 예상하는 이유다.

양측이 매년 지리한 소모전을 벌이는 근본 원인은 딱 하나다. 국내 IPTV·OTT 시장엔 콘텐츠 가격을 정하는 원칙과 기준이 없다. 해마다 각 사가 일단 콘텐츠 외상 거래를 하고, 나중에 개별 협의를 통해 대가를 주고받는 ‘선공급 후계약’ 방식을 쓰고 있다. 계약 시점에 콘텐츠 기본 가격을 정하고, 여기에다 추후 한쪽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하는 등으로 정산 방식을 보완할 수 있는데도 양측 모두 양보 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국내 CP와 통신사 간 대립각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년분은 아예 해를 넘겼다. 작년 8월엔 IPTV 콘텐츠 사용료를 두고 송출 중단은 물론 소송까지 벌어졌다. 시장은 갈수록 커지는데 객관과 권위가 실린 기준이 없는 탓이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정부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각자 관할 주도권을 내세우며 개별 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사안마다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만 맴돌기 일쑤다.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콘텐츠 대가 산정 개선 협의회를 가동해 내년까지 방송채널에 대해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새로 적용하는 안을 채택했지만 제때 실현될지 불투명하다. 아직껏 유관 부처·위원회 등과는 의견 수렴도 되지 않았다.

애가 끓는 쪽은 사업자다. 각 사가 콘텐츠에 얼마를 쓰고, 얼마를 받을지 깜깜이인 와중엔 어느 쪽도 사업을 적극 펼칠 수 없다. 물 들어오니 노를 저어야 할 때가 지금의 ‘K콘텐츠’ 시장이다. 콘텐츠값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