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권위나 카리스마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 후보자를 더는 찾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통령과 정부가 이끌고 가는 시대가 끝났다면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한다면 지금 같은 승자 독식과 권력 집중은 그 자체로 국가적 리스크일 수밖에 없다. 죽기살기식 정파적 양극화가 극심한 가운데 폐쇄적·동질적 대선 캠프가 그대로 권력 독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다원주의와 협치, 분권화, 자율성 등이 더욱 요원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에 이르러서야 집권당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과오를 인정하기 시작한 부동산 정책, 수정 가능성을 열어놓은 탈(脫)원전 정책 등은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다. 응집력 있는 집단 구성원일수록 비판적 의견을 내놓기 어렵다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의 주장 그대로다. 비슷한 성향을 지닌 구성원들이 모이면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더 극단적인 결정을 한다는 데이비드 마이어스와 헬무트 램의 경고도 남의 일이 아니다.

대선 캠프들이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지만, 모여든 인간군상의 면면은 실망감을 넘어 위험성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기껏해야 진영의 반쪽에 불과하다. 여당만 해도 이른바 586 인사 아니면 권력의 맛에 한번 취해보겠다는 기회주의자 천지다. 제1 야당 국민의힘도 다를 게 없다. ‘영남법조인당’도 모자라 검사 선후배까지 설치면서 ‘검찰당’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보수 쪽에서도 나온다. 캠프 내 자칭 전문가란 사람들도 의심스럽다. 해당 분야에서 퇴물이거나 함량 미달로 밀려난 이들이 태반이다. 진짜 최고 인재라면 캠프 주변을 서성거릴 이유가 없다.

저런 인사들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장면을 상상하면 쏟아지는 정책공약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여야 모두 정권을 창출해봤지만 한 번도 ‘창조적 파괴’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정당들이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그들만의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정당들이 대전환을 외친다고 누가 믿어줄까.

여야 대통령 후보가 공약하는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만 해도 그렇다. 툭하면 취약계층을 어렵게 해선 안 된다는 이유로 디지털 혁신에 이런저런 제한을 가해온 여당이다. 이들은 규제가 정작 취약계층이 이동할 새로운 기회를 앗아간다는 사실엔 눈을 감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환적 공정성장을 내세우지만, ‘성장’ 앞에 뭔가 덕지덕지 붙이는 순간 성장 자체가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형용사를 좋아하는 정치일수록 데이터와 증거 기반 분석에서 멀어지고 규제와 친구처럼 어울린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학습한 바다.

제1 야당 대선 후보의 디지털 전환론도 의심쩍긴 마찬가지다. 혁신의 적(敵)은 자기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본 적 없거나 반(反)기업 운동을 업(業)으로 해온 정치인만이 아니다. “‘타다’ 서비스는 불법 범죄 행위, 기업 대표를 즉각 구속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검사 출신 의원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끌던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은 가짜”라는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진짜 검찰개혁을 할 수 있을까. 신사업과 혁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 해석은 필연적으로 ‘과잉 규제’ ‘과잉 처벌’로 질주하게 돼 있다.

기득권 정치세력을 놔두고 혁신을 외치는 것은 사기다. 여당 대선 후보 측근 의원들이 차기 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대표는 재·보궐선거 무공천과 다음 총선 불출마를 발표했다. ‘쇼’가 아니라면 ‘독선’과 ‘위선’의 상징으로 전락해버린 586들이 깨끗이 물러날 수 없는가. 인적 적폐의 누적분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당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쇄신의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 않을까 경계하는 야당이라면 정권교체를 말할 자격이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생각이 있는 대통령 후보라면 캠프에 불나방처럼 모여든 인사들을 등용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부터 하면 좋겠다. 캠프 슬림화가 즉각 이뤄질 것이다. 당선 후 인수위원회는 물론 내각을 진영을 초월한 최고의 인재로 짜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판갈이하겠다고 나온다면 박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인적 쇄신을 주도하는 쪽이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