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공석이던 주한 미국대사에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필립 골드버그 주(駐)콜롬비아 대사가 내정됐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부임 동의)을 요청한 상태로, 공식 지명 후 상원 인준 절차에 2~3개월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는 한국의 새 정부와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잇따르는 시점에 미국이 직업 외교관 중 최고위 경력의 대북 제재 전문가를 대사로 보내는 의도다. 골드버그 내정자의 이력을 보면 메시지가 읽힌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 국무부의 대북 유엔 제재 이행조정관을 지내면서 ‘북핵 등 대량살상무기의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CVID)’를 명시한 유엔 결의 제1874호 이행을 총괄했다. 북한이 중국에서 밀반입하려던 전략물자 봉쇄도 주도해 ‘대북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최근 도발이 부쩍 늘어난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에 다름 아니다.

북한은 올 들어서만 6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상하 회피 기동 등 다양한 계열의 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다. 핵실험 실시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까지 시사했다. 어제 동해상으로 두 발의 탄도미사일을 쏜 시점이 골드버그 대사 내정 사실이 알려진 바로 다음 날이란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미국에 맞대응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겠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대북 강경 기류를 보면 통하지 않을 듯하다.

미국은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하자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독자 제재에 나서 북한 국방과학원 소속 5명을 그 대상자로 올렸다. 미·일 정상은 “CVID를 강력히 결의한다”고까지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북 회담 이후 사라지다시피 하고,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CVID’ 용어를 한국을 ‘패싱’하고 꺼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의 도발에도 남북한 대화 이벤트에 집착해 온 문재인 정부에 보내는 적색 신호로 봐야 한다. 대북 CVID를 주도한 인물을 대사로 발탁한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날에도 종전선언을 잇달아 외쳤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거론하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을 흩뜨리고 있다. 북한에 굴종적인 ‘가짜 평화쇼’에 매달리다 동맹은 이완됐다. 차기 정부는 이래선 안 된다. 강력한 안보와 동맹 강화를 통해 북핵 폐기를 이끌어내 ‘진짜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