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종교마저 갈라친 업보
“스님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조만간 들고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지난 21일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를 계기로 불교계의 심각한 반정부 정서가 세간에 알려졌다. 이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은 건 작년 늦가을이었다. 조계종 사정에 밝은 동국대 교수로부터였다.

그는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둘러싼 오랜 딜레마, 문재인 정부의 불교계 홀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 등에 대해 1시간 넘게 설명했다. 그때는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재미있는 얘기’ 정도로 치부했다. 속세와 불가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다.

'불공정' 말하는 불교계

불교계가 정부에 등 돌린 속사정 중에는 코로나19 상황도 있다. 불교는 법회를 달마다 연다. 매주 예배를 보는 기독교·천주교와 다른 점이다. 법회가 역병 때문에 취소되면 기도비가 다른 종교보다 많이 줄어 재정 타격도 더 심한 구조다.

불교계는 이런 상황에서도 호국 전통에 따라 연중 최대 행사인 부처님오신날 연등행렬을 잇따라 취소하고 국난 극복에 동참했다. 그런데도 비하 발언이 잇따르자 급기야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도 불공정했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는 말이 터져나온 것이다.

의아한 건 정부·여당의 대응방식이다. ‘종교계와 척지면 안 된다’는 건 일종의 불문율이다. 형이상(形而上)의 영역인 종교 앞에서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신의 뜻’이란 한마디가 모든 것을 형해화해 종교계와 소통할 때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종교를 앞세운 군대가 가장 강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더구나 한국갤럽의 작년 설문에 따르면 불교도 비율은 16%로 기독교(17%)에 이어 2위다. ‘무교’라고 답한 60% 중 20%는 호감 가는 종교로 불교(1위)를 꼽았다. 인구수로 따지면 대략 1400만 명이 불교도이거나, 불교를 좋아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불교계 사정을 들려준 교수는 짧게 답했다. “180석이란 허상에 취한 탓이겠지요. 임기 내내 국민을 갈라쳤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으니 내 편만 보고 막말하다가 이 사달이 난 겁니다.”

정부, 낮은 자세로 국민 섬겨야

하긴 정부·여당이 ‘국민의 뜻’이란 미명 아래 분열로 몰아넣은 게 종교만이 아니다. 집주인·임차인을 모두 피눈물 흘리게 한 임대차법을 강행 통과시켜놓고 여당 원내대표가 주먹을 쥐고 환호했던 게 2년이 채 안 됐다.

대통령 ‘1호 업무지시’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밀어붙여 공공기관을 노사, 노노 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 얼마나 힘드냐”며 의사·간호사를 갈라친 건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지율은 굳건하다. 그러니 ‘종교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시라도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 내홍을 수습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여권은 위기감이 팽배하다. 오죽하면 후보 입에서 “지면 감옥 갈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문재인 정부의 갈라치기 ‘타깃’이 됐던 2030, 유·무주택자, 의사·간호사들은 죽비를 들어 여당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어쩌면 불교도들도 이 대열에 합류할지 모르겠다. 이런 걸 불가의 말로 업보라고 한다. ‘낮은 자세’가 정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