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K코미디'를 보는 재미
요즘 세상에 공산주의자가 어디 있겠나. 시진핑도 김정은도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공산주의의 목표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아소시아시옹(연합) 형성”(《공산당 선언》)이다. 이런 고매함을 단 1g이라도 간직한 공산주의자는 멸종된 지 오래다. 모두 권력을 위해 혁명을 파는 전체주의자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투쟁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멸공 해시태깅은 쇠락한 공산주의와의 대결 선언이 아니다. 몰상식이 압도하는 공산권에서나 볼법한 코미디 같은 일이 넘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죄인’인 탓에 강요당하는 침묵을 끊고 B급 언어를 활용한 기발한 메시지 발신이다. 중국 관리가 “소국이 감히 대국에…”라고 모욕해도 항의 한마디 못했다는 기사를 ‘멸공’ 태그한 데서 잘 드러난다.

'멸공'이 입증한 몰상식 세상

정 부회장은 상식을 말했지만 사태는 비상식으로 흘렀다. ‘멸공’은 다 죽이자는 야만이고, ‘난 공산당이 싫어요’는 혐오 조장이라는 대깨문식 삼류 논법이 판친다. 상식의 언어인 ‘멸공’마저 금기어가 되다시피 하는 어이없는 결말을 맞았으니, 희대의 코미디 아닌가.

요즘 한국은 실로 코미디 천국이다. ‘용진이 형’ 코미디가 끝나자 ‘건희 누님’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공중파 TV가 검증을 빙자해 야당 대선 후보 배우자의 사적 발언을 탈탈 터는 방송을 감행한 것이다. 특정 성폭행 피해자에게 공개적으로 ‘n차 피해’를 입히는 기막힌 일도 감행했다. 방송 후 의외로 ‘걸 크러시’ 조짐이 보이자 많은 이들이 돌연 방송사를 비난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순식간에 적과 동지가 뒤바뀌고, 심판과 선수가 뒤죽박죽되는 코믹극이 되고 말았다.

K코미디의 웃음 포인트는 다큐를 찍는 듯한 출연자들의 ‘진지 모드’다. 5년 내리 집값이 폭등해 자산 격차가 기록적인데도 대통령은 엄숙한 표정으로 ‘임기 내내 분배가 개선됐다’는 원고를 읽었다. 매년 울트라슈퍼 예산을 짜 돈을 퍼붓고선 “우리 정부는 인위적 경기부양을 안 한다”고도 했다.

거대 여당은 ‘헛웃음 담당’이다. 여당 대표는 집값이 오르면 집주인과 세입자가 절반씩 나눠 갖는 기상천외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전 정부를 ‘토건족’이라고 맹비난하더니 자신들의 예타 면제는 벌써 100조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84조원)을 가뿐히 따돌리며 토건 경제 완성 단계다. 사상 초유의 ‘2월 추경’도 기어코 확정시켰다. 두 달 연속 금리를 인상하며 인플레 진압에 여념 없는 한국은행과의 ‘엇박자 케미’는 실소의 보고다.

엘리트관료·공권력도 희화화

엘리트 관료들도 K코미디의 당당한 주역이다. 최근 3년 새 나랏빚이 49%나 폭증했는데도 경제부총리의 페이스북에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했다’는 자부심이 충만하다. 청와대 경제수석도 ‘국채 발행으로 재정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신박한 이론을 설파 중이다. 어떤 통계청장은 고용·소비·분배가 곤두박질치자 통계 산출 방식을 바꿔버리고선 ‘시계열이 끊어졌으니 이제 과거와 비교 말라’고도 했다. ‘개콘’에서도 보기 귀한 낯뜨거운 캐릭터다.

희화화된 공권력은 거의 허무개그 수준이다. ‘개혁의 상징’으로 날치기 출범한 공수처는 1년 넘도록 기소 실적 제로(0)다. 경찰은 24시간 출입이 개방된 대학캠퍼스에 대자보를 붙인 청년에게 주거침입죄를 씌웠고, 검찰은 6급 공무원이던 여당 대선 후보의 측근 소환에 벌벌 떨며 공소시효를 넘길 판이다. 멸콩 투쟁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정 부회장의 재등장 여부는 미지수다. ‘코’미디 같은 세상 박멸이라는 멸‘코’ 투쟁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