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과학자의 성과와 도덕성의 관계
한국 시간으로 지난 크리스마스 밤 9시20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럽 우주국(ESA), 캐나다 우주국(CSA)은 20여 년간의 협력 끝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James Webb Space Telescope)’을 우주로 쏘아올렸다. 발사 27분 뒤에 망원경의 본체가 로켓 상단에서 성공적으로 분리됐다. 그렇게 발사 1단계는 성공했지만, 앞으로 망원경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한달 정도의 우주 여정이 남아 있다. 그러니 목적지에 망원경이 안착하고 정상적으로 측정을 시작함으로써 우주 탐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JWST의 최종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그 발사만으로도 지난 크리스마스는 인류 과학사의 기념비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가족과 크리스마스 저녁에 NASA에서 보내주는 JWST 발사 실황을 보며 물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JWST의 성공적 발사에 감격스러워하는 가운데 마음 한구석 찜찜함을 지우기 어려웠다.

JWST는 1961년 케네디 정권하에서 NASA 국장으로 임명돼 아폴로 미션의 초석을 깐 제임스 에드윈 웹을 기리는 이름이다. 그가 국장으로 재임 중이던 1967년 발사를 앞둔 아폴로 1호는 지상 테스트 중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3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했다.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무모하다면 무모한 임무를 준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이 모든 테스트가 매끄럽게 진행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누구나 사고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에서도 막상 인명 사고가 나면 임무 가치에 대해 회의가 생기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폴로라는 이름을 내건 1호 우주선이 발사도 안 된 상태에서 지상 테스트 도중에 발생한 인명 사고라면 아폴로 임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고를 조사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NASA 및 아폴로 임무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도록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 바로 웹이었다.
[최형순의 과학의 창] 과학자의 성과와 도덕성의 관계

'제임스 웹' 공적 뒤엔 인권침해 그늘

그런 웹이 NASA 국장으로 재임한 시기는 공산주의에 대한 ‘적색 공포(Red Scare)’와 동성애에 대한 ‘라벤더 공포(Lavender Scare)’의 여파가 잔존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여파 중 하나는 미국 정부가 성소수자를 색출해 해고하는 정책을 공공연히 시행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적어도 웹이 이런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그의 재임 기간 동안 NASA 내에서도 이런 정책으로 인해 해고된 인사 건이 90여 건 있었다고 하니, 조직의 수장으로서 성소수자 인권 침해를 최소한 방관 내지 방조했다는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지 않은 과오가 있는 인물의 이름을 과학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장비와 영구적으로 연결짓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갑론을박도 있었다. JWST의 이름을 바꿀 실질적인 마지막 기회였던 지난 가을 NASA는 동성애자 인권 탄압에 웹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증거가 없다며 웹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 내렸다.

우주망원경 이름 놓고 '갑론을박'

물론 인간은 누구나 그 시대의 산물이다. 도덕, 윤리, 인권 등에 절대값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웹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정부 정책의 부당함에 맞설 정도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결정적 흠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평균적 도덕관을 갖췄으나 행정가로서 특출나게 유능했던 인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특히 그가 오늘날의 NASA를 있게 한 뚜렷한 공적이 있고, NASA가 항공우주 및 천체물리 분야에서 세계적 지위에 올랐음을 감안했을 때 그의 이름을 역사적인 천체 망원경에 붙여줘야 할 이유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웹이라는 인물이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면, JWST를 쏘아올린 오늘날의 우리 역시도 지금 바로 이 시대의 산물이다. JWST라는 이름은 1960년대의 제임스 웹이라는 인물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런 그의 이름을 망원경에 붙이기로 결정한 2021년의 우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JWST라는 이름을 바꿀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 2021년은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인권탄압을 방조해도 되는 시대라는 뜻일까 의문이 남는다. 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 위에 묘하게 겹쳐진다. 그래서 JWST라는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이 한껏 달갑지만은 않았나 보다.

최형순 KAIST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