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의 호모파덴스] 'K방역 수호천사'의 날개가 꺾이기 전에
2020년 2월 20일, 코로나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하고, 사흘 뒤 정부는 코로나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했다. 그로부터 22개월이 흘렀다. 4차 산업혁명을 꿈꾸던 우리들의 일상은 난데없는 역병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메르스 사태처럼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끝없는 변이들의 등장으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 블루조차 사치로 여겨질 만큼 혹독하게 코로나와 맞서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장기간의 번아웃으로 인해 ‘코로나 블랙’ 지경에 이른 우리 의료진이다.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선 코로나 대응 주력 부대라 할 수 있는 내과 계열 진료과뿐만 아니라 외과 계열인 정형외과와 산부인과 등 전공을 불문하고 퇴사하는 전문의가 늘고 있다. 2년 가까이 지속되는 비상운영체제 속에 K방역의 수호천사인 의료진의 ‘사명감(使命感)’이 ‘사명감(死命感)’으로 뒤바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간호직군은 더욱 위태롭다. 이미 코로나19 이전에도 국내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의 약 46%만이 근무 중이었으며, 재직 간호직군의 4분의 3이 이직 성향을 나타낼 정도로 열악한 근무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쓰나미처럼 덮친 것이다.

코로나19 심각 단계 이후로 서울의 4개 시립병원을 포함해 공공병원은 간호인력 부족에 노출된 지 오래다. 12월 초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민간병원 간호직 재직자의 40%가량이 전담병원 지정 후 이직 의사를 밝힌 것은 그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직 사유는 단순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추구 등과는 거리가 멀다. 장기간의 과로로 소진된 상태에서, 그야말로 살기 위해 마지못해 사직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이전부터 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몰아온 태움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인력 부족에 따른 업무 과중의 구조적 문제를 당사자나 해당 병원의 관리 소홀 등으로 책임 전가하기 때문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한 달 반 만인 지난 13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단계적 일상회복을 2주 동안 멈추고 장기전을 위한 재정비에 들어갈 것을 요청했다. 대한감염학회와 대한항균요법학회,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도 같은 날 공동 성명을 내고, 긴급 멈춤을 통해 유행 증가 속도를 억제하고 확진자와 중환자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추진할 것을 호소했다. 결국 정부는 18일을 기준으로 다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돌입했으나 이미 사흘 연속 확진자 7000명을 넘어선 상태였고, 특히 17일 위중증 환자 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 1016명에 이르렀다.

사명감으로 현장에서 버티는 것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가 있다. 코로나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위한다면, 코로나19 시대에 K방역의 영웅인 의료진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보상체계를 보완해야 한다. 의료진의 간절한 호소를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밥그릇 싸움 정도로 치부한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이솝우화 속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는 우리가 될 것이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5월부터 3개월 동안 13차례의 노정교섭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합의문의 주요 내용 중에는 감염병 대응 인력 기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세부 조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중증도별 근무 간호사 배치 기준 마련 및 실행, 부족한 간호인력은 전담병원 및 협력병원 등이 직접 채용, 감염병전담병원은 지정 기간 내 신규 기준 적용 및 보상금 조정, 향후 감염병 의료인력 기준 정책연구 추진 등이다. 특히 생명안전수당을 통해 감염병 대응 의료인력 지원금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감염예방법 개정에 국민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주요 사항 중에는 직종별 인력 기준 마련, 간호등급 차등제를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 기준’으로 상향 개편, 예측가능하고 규칙적인 교대근무제를 포함한 시범사업 방안 마련 등이 포함돼 있다.

저마다의 건강이 소중하다는 믿음에 공감한다면, K방역의 수호천사인 의료진의 날개가 꺾이지 않도록 개개인의 번아웃을 방지하고 근무 여건을 정상화하는 노력이야말로 백신 접종과 함께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