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어제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49조원(8.9%) 늘린 607조7000억원 규모로 통과시켰다. 사상 첫 600조원대 예산(본예산 기준)이다. 그런 ‘초슈퍼예산’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예산 심사와 증액 시점의 적절성을 놓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국회가 제 역할을 했느냐다. 헌법(제54조1항)은 국회에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정부가 예산편성권을 갖지만, 이를 꼼꼼히 심사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을 국회 역할로 규정했다. 국회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빼고는 관례적으로 정부 예산안을 순감 처리해왔다. 그런데 어느새 심사과정에서 슬그머니 예산을 늘리는 게 예사가 돼버렸다. 지난해(2조2000억원)에 이어 올해 심사 때도 3조3000억원을 늘려 놨다.

긴급하고 필수적인 예산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여당 대선후보가 주장하는 지역화폐 관련 예산이나 SOC 예산 등은 누가 봐도 선거용 선심 예산이다. 이런 예산안을 단독 처리해놓고 ‘민생 예산’ 타령이다. 더 가관인 것은 야당의 행태다. 국민의힘은 대선을 앞둔 선심성 퍼주기를 비판하며 12조원 순삭감을 주장하다가 SOC 예산 등을 받고 슬그머니 순증안에 합의했다. 퍼주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점도 문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7% 오르며 10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고 아우성이다. “퍼펙트 글로벌 인플레 스톰이 오고 있다”(국제금융협회·IIF)는 경고까지 나온 상황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 우려에 긴축에 나서고 있다. 2년간 코로나 위기로 재정을 퍼부었던 미국(-17.1%) 독일(-19.1%) 프랑스(-8.1%) 등 주요국들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대폭 줄여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나홀로 퍼주기’를 이어간다. 내년 양대 선거를 의식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정부 예산은 공돈이 아니다. 다 국민 혈세이고 나랏빚이다. 현 정부 들어 빚 내서 예산을 짠 탓에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국민 과반이 반대한 이유다. 젊은 세대는 “돈 대신 공정한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데 정치권만 구태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