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핀테크의 도발은 계속 돼야한다
“규제의 불확실성이 핀테크산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출현을 막고 있습니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가 며칠 전 협회 기자간담회에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수년간 규제완화와 특례를 주며 육성해 오더니 갑자기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을 꺼내 규제의 칼날을 세우는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플랫폼 서비스가 획일화되고, 이대로 가다간 핀테크 후진국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핀테크 업계가 부글부글 끓게 된 건 두 달 전 금융위원회가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플랫폼 기업들이 해오던 금융상품 비교 추천 서비스에 브레이크를 걸면서다. 당국은 상품 추천이 단순 광고가 아니라 ‘중개’ 행위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별도의 라이선스를 취득할 때까지 서비스를 금지했다. 핀테크들은 부랴부랴 금융감독원에 대출모집인 등록을 거쳐 어렵게 서비스를 재개했다.

그런데 보험상품은 아직 막혀 있다. 보험대리점 자격을 따야 하는데 현행법상 플랫폼(전자금융업자)은 보험대리점 자격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맵 해빗팩토리 등 보험에 특화된 핀테크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핀테크 업계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만 당국의 조치 배경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불완전 판매로 ‘라임펀드 사태’ 같은 대형 금융사고가 핀테크에서 터지지 말란 법은 없다. 그 여파로 규제가 더 강화되고, 혁신 동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동일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빅테크로 불리는 카카오 토스 등 대형 플랫폼이 금융사를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자 당국이 ‘속도조절’에 나섰다는 평가도 있다.

핀테크와 정부의 묘한 긴장 속에서 나온 류 대표의 발언이 눈길을 끈 것은 당국에 각을 세운 ‘용기’ 때문만은 아니다. 규제의 틀 안에서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국내 핀테크들의 도전 DNA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간편결제·송금, 마이데이터,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조각투자, AI투자자문 등에서 예비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들이 즐비하다. 모두 창업자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설득, 금융당국의 양보(규제완화)가 빚어낸 결실이다.

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핀테크도 결국은 금융이다. 남의 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하는 금융업은 인허가 등 엄격한 규제가 불가피하다. 그 강도가 심하면 ‘관치금융’으로 비판받지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아직도 통하는 곳이다. 그래서 금융사 경영진이 당국을 직접 비판하는 일은 금기시돼 있다. 법 규정보다 무서운 ‘괘씸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가 토스뱅크의 ‘대출 셧다운’ 사태 아닌가 싶다. 지난 10월 초 출범한 토스뱅크는 열흘 만에 대출한도 5000억원을 소진했지만 당국은 지금까지 추가 한도를 주지 않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규제 탓으로 치부하기엔 신생 은행 입장에서는 너무 가혹한 조치다.

토스는 출범 때 아무 조건 없이 연 2% 금리를 주는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내놓았다. 시중은행이 연 0.1%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이고, 기존 은행을 겨냥한 ‘도발’이었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당국은 출혈 마케팅을 우려했지만 토스는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는 참혹하다. 받아놓은 예금이 2조원을 훌쩍 넘는데도 대출을 더 이상 하지 못해 역마진이 생기고 있다. 토스의 ‘판단 착오’일 수 있지만, 예대금리의 구조를 깨보겠다는 발상의 전환과 도전정신은 충분히 높이 살 만하다.

당국에 미운털이 박히고, 괘씸죄가 두렵더라도 핀테크의 도발은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혁신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금융당국을 움직일 수 있다. 늘 그래왔듯이 시장이 먼저 치고 나가야 당국의 발걸음도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