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재부 수난시대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예산철이면 기획재정부 예산실의 복도는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각 부처 관료들이 담당 예산실 사무관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하는 게 예사였고, 일이 안 풀리면 장·차관들이 나서 그 윗선을 찾아가기도 했다. 예산실이 ‘정부 안의 정부’였다면, 금융정책국(현 금융위원회 산하)은 금융시장에서 ‘갑 중의 갑’으로 통했다. 지금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로 들리겠지만, 옛 재무부 시절 새파란 사무관이 60대 시중은행장에게 전화 걸어 호통을 치고 인사내용을 지시했다는 얘기도 공공연했다.

기재부는 당시만 해도 예산과 금융, 세제, 국고, 외환에 이어 정부 기획조정 업무까지 총괄하는 명실공히 ‘경제정책 사령탑’이었다. 수습 사무관들에게 당연히 최고 인기 부처였다. 상위권에서 지원 이탈자가 생기면 뉴스가 될 정도였다.

그런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민간인을 장관으로 과감히 앉혔고, 뒤이은 정권들도 과거처럼 관료들에게만 기대진 않았다. 기재부 위상이 서서히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 정부 들어선 바닥 모르고 급전직하다. 지난해 일반행정직 중에서 1지망 지원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3지망을 포함해서도 ‘꼴등’이다. 재경직 중에서도 공정위, 금융위 등에 앞순위를 내줬다. 한창 일할 중간 관료들의 민간행 엑소더스도 이어지고 있다.

관가에선 그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본다. 우선 과거 같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예산이나 정책의 무게중심이 상당부분 여의도(국회) 쪽으로 기울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증권거래세 인하,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 등을 놓고 여당과 대치하다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최근엔 ‘국정감사’와 ‘기재부 해체’ 협박까지 받았다.

이런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정치적으로 감싸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현 정부에선 번번이 여당 편이다. 물론 과거 같은 리더십의 부재나 엉터리 세수추계 등으로 여당에 공격의 빌미를 준 이유도 있다. “후배들이 짐을 싸는데 딱히 말릴 명분이 없다는 게 더 안타깝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 와중에 여당 대선후보가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기재부를) 맴매(매로 때린다는 의미의 유아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지역화폐 예산 증액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관료사회를 얼마나 더 ‘묵사발’로 만들어야 만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