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反日) 프레임이 급기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에까지 미쳤다. 영정을 그린 월전 장우성의 친일 행적을 이유로 특정 단체가 교체를 요구하자 문화재청이 구체적 작업에 들어가면서다. 문화재청은 의견 수렴 뒤 교체 여부를 확정한다지만, 새 영정의 얼굴형과 복식 등 제작 방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는 걸 보면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월전의 친일 행적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교체를 서두르는 건 또 다른 ‘반일몰이’가 아닌지 의문이다.

강감찬 장군, 윤봉길 의사 등도 그려 표준영정의 거장으로 꼽히는 월전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 등에 작품을 출품해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친일 공격에 시달렸다. 당시 화가로 입문하려면 이런 미술전을 거치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 이유만으로 친일로 분류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충무공 영정은 1953년 현충사에 봉안됐고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면서 100원짜리 동전에도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민에게도 익숙한 영정을 바꾸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일제 36년간 총칼을 들고 맞서 싸운 분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강점기를 살았다는 것 자체가 비난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일제의 ‘불량한 조선인’ 낙인과 핍박을 피하기 위해 당시 조선인 80%가 성(姓)을 바꿨고, 10%는 개명했다. 이런 사람들을 모두 친일로 몰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도 이 정권에선 ‘친일·토착왜구’ 정치 프레임을 작동시키면서 창씨개명한 평범한 백성까지 ‘반일 적폐’ 대상에 올리는 일이 유독 잦다. 애국가에도 친일을 덧씌우고, 죽창가를 부르며 국민을 갈랐다.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로 한·일 외교는 파탄난 상태다. 반일이 법 위의 ‘국민정서법’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여당 대선후보가 ‘역사왜곡 단죄법’을 만들겠다고 나선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5·18 민주화 운동 및 독립운동 비방, 친일 행위 찬양 등 처벌범위까지 열거했다. 이런 입법이 강행된다면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역사적 사실이 특정 시각에서 재단될 소지가 크고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는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 해석만 강요한다면 반이성적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다. 이는 돈 퍼붓기 못지않은 악성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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