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니콘 키운다는 착각
관치금융과 규제의 근원
벤처자본도 지원도구로 전락

부동산 물린 돈 일부만 돌려도
신생 유니콘 수십개 가능
민간 모태·메가펀드 나와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안현실 칼럼] '강한 금융'이 '강한 유니콘' 만든다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분석이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두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불평등과 기업가 정신 간 관계가 있다면 높아진 불평등이 기업가 정신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거나, 생존의 필요성이 기업가 정신을 높인다는 가설이 나올 법하다. 실제로 이런 가설을 지지하는 실증연구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그러니까 불평등은 문제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가설은 불평등을 기업가 정신의 분출로 깨뜨릴 수 있는 ‘기제(mechanism)’가 작동하는 사회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을 알아보는 금융의 역할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불황기나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에 ‘기회의 창’이 열린다지만 기업가 정신에 화답해주는 금융이 없다면 소용없다. 불행히도 한국에서 금융은 전투적인 노조와 함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분야로 꼽혀왔다. 최근 스위스 비즈니스스쿨 IMD 평가에서 금융의 순위가 많이 올라왔다지만 여전히 국가경쟁력에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IMD가 12위로 평가한 2021년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에서 은행(42위)과 벤처캐피털(39위)은 한참 뒤처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코로나19 발생 이전 마지막으로 순위를 매긴 2019년 국가경쟁력평가에서도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18위로 전체 경쟁력(13위) 밑이었다. 벤처캐피털 가용성은 51위였다.

국내 스타트업 축제 ‘컴업(COMEUP)’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벤처투자액이 역대 최고치에 달하고,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15개로 늘어나는 등 ‘제2 벤처붐’이 일고 있다”고 했다. 또 “올해 글로벌 투자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세계 유니콘 기업도 코로나19 이전보다 세 배나 많은 900개로 늘어났다”고 했다. 이 발언에서 우선 벤처붐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이 세계 유니콘 기업 증가 속도를 따라가고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15개 유니콘 기업에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이 순간에도 미국, 중국, 인도, 이스라엘, 영국 등에서는 신생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정부가 겸손했다면 15개 유니콘 기업의 등장 과정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대부분 해외 자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외국 자본 종속을 우려하지만 한국 스타트업의 가치를 알아봐준 글로벌 자본에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다. 해외 자본이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화를 실현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한국은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올려놓을 강한 금융이 왜 없는지, 한국은 해외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울 글로벌 자본을 왜 꿈꿀 수 없는지가 그것이다.

유니콘 기업 수에 집착하는 정부가 정작 투자할 국내 자본에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관치금융과 규제가 그것이다. 정부는 뭐든지 정책자금부터 동원하려고 한다. 정부가 통제하는 모태펀드는 되고, 대기업·은행·보험사 등의 유동자금을 활용하는 민간 모태펀드는 안 된다. 상당 부분 부동산 때문이라는 가계부채만 2000조원이다. 이 엄청난 자금의 일부만 스타트업 쪽으로 흘러가도 수십 개 신생 유니콘 기업이 금방 나올 것이다.

대형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되레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규제하는 것도 그렇다. 100% 완전 자회사, 200% 이하 부채 비율, 외부 자금 출자 비중 40% 이하…. 글로벌 메가펀드와 경쟁이 될 리 없다. 분산투자와도 맞지 않는 해외 투자 20% 제한은 벤처자본의 글로벌화를 막는다.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의 핵심이자 당당한 산업으로 대우받아야 할 벤처자본이 지원 도구로 취급당한다. 정부가 말하는 금산분리 원칙은 관치금융의 또 다른 포장일 뿐이다.

금융에 대한 무지가 외환위기 때는 비싼 대가로 돌아왔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방파제가 됐다는 씁쓸한 분석이 있다. 국가 미래를 운에 맡길 수는 없다. 강한 금융이 해외 자본과 경쟁하면 더 많은 국내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진입할 수 있다. 성공 사례가 쏟아지면 더 많은 청년이 스타트업에서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한국의 자본투자로 해외 첨단기술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서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에도 유리하다. 이 모든 기회를 틀어막는 관치금융과 규제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