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선주자들이 'AI정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난주 국내 인공지능(AI)업계엔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자연어처리(NLP) 분야 세계적 학회인 ‘EMNLP’에서 한국이 AI 논문 121건을 제출, 33건이 통과돼 처음으로 세계 5위를 기록한 것이다. 통상 NLP 학회에서 한국 논문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10건 내외로, 또 다른 주요 기술인 머신러닝(ML) 분야와 함께 10위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비슷한 시기, 아쉬운 소식이 함께 회자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한국공학한림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등 6개 단체와 함께 주요 4개 정당 대선캠프에 “대선주자들의 행보에서 과학기술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전달한 것이다. “세계 과학기술이 ‘대전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정치 지도자 인식은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요지다. 사실 주요 대선후보들은 후보 경선 과정에서든, 후보 선출 이후 행보에서든 구체적인 과학기술 비전을 내비친 적이 없다. 유권자들이 들은 건 대장동 특혜 시비나 고발사주 논란과 같은 ‘블랙홀 이슈’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은 말이 없으니 정책 검증도 할 수 없었다.

선거의 관건은 표심이다. 그러다 보니 뒤로 밀리는 게 과학기술 정책이다. 표에 영향을 줄 ‘자극적 논쟁거리’와는 거리가 있는 탓이다. 대선주자 말이 대개 “미래 산업을 잘 육성하겠다” 는 일반론에 그치는 것도 그래서다.

문제는 이번 대선후보들의 임기 내에 벌어질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 9월 ‘AI 하이프사이클’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기술 주기는 5단계로 나뉘는데, 올해 대다수 주요 기술이 2단계인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을 지나 3단계인 ‘환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르면 2~5년 내엔 해당 기술들의 생존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국가별 순위가 매겨지고 시장에서의 종속관계가 함께 결판날 수도 있다. 내년 임기를 시작할 20대 대통령은 2027년까지 정권을 잡는다. 환멸단계와 시점이 맞물리는 셈이다. 국내 대기업은 이미 AI 서비스 상용화에 사운을 걸고 나선 상황이다. “졸면 죽는다”는 절박함에선 결기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후보들만 이런 기류에서 비켜나 있다.

올해 EMNLP에서 한국이 약진한 건 몇몇 기업이 분투한 덕이다. 네이버 혼자 9건의 논문을 통과시켰다. 국가 순위 상승의 30%를 차지한 셈이다. 정부가 예산을 쏟아붓는 미국,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네이버가 NLP로 홀로 눈을 돌려 한국이 5위가 됐다”는 학계 평가는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언제까지 기업만 고군분투하게 놔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