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줄 세우는 나라
사회주의 국가엔 ‘줄서기’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많다. 그중 하나. 구소련에서 우주비행사의 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부모님을 찾는 질문에 딸이 답했다. “아버진 지금 로켓을 타고 우주에 나가 계시니까 1주일 뒤에 오실 거예요. 어머닌 지금 배급받으러 줄 서 계시니까 2주일은 넘게 걸릴 거예요.”

지난달 세상을 떠난 사회주의 경제학의 거두(巨頭) 야노쉬 코르나이(1928~2021)는 소련식 사회주의를 ‘물자 부족의 경제’로 규정했다. 국가가 시장을 대신하기 때문에 수요·공급 간 불균형과 물자 부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주장이다.

소련 사회에서는 줄서기가 일상으로 여겨졌다. 배급줄 외에도 상점 앞마다 긴 줄이 이어졌다. 지나던 행인들은 무조건 줄 끝으로 붙었다. 뭘 파는지 물어보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나중에 암시장에 팔아도 되고, 친척에게 줘도 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사는 사람은 ‘비(非)사회주의적 인간’으로 지탄받았다.

또 교통단속 현장에서는 현금이 오가는 게 일상이었다. 벌금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즉석에서 해결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딱지를 들고가 벌금을 내려면 최소 몇 시간은 또 줄을 서야 하니까. 소련인들이 줄서는 데만 연간 400억 시간, 1인당 하루 5시간 이상 허비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당시 폴란드 체코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졸지에 한국이 그런 ‘줄서는 나라’ 행렬에 끼게 됐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발생 직후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과 슈퍼마켓 앞에 수백 미터 긴 줄이 형성됐고, 올여름엔 전 국민이 백신 ‘선착순’ 예약을 위해 컴퓨터 앞에서 밤샘을 해야 했다. 이번엔 요소수를 사려고 주유소 앞에 다시 긴 줄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21세기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이게 무슨 꼴인가”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부랴부랴 중국 세관에 묶여있던 물량을 확보해 ‘급한 불’을 껐지만 “줄서는 게 이게 마지막이냐”는 불안은 여전하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무개념 발언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요소수 늦장 대응’ 질타에 “그래도 정부가 지난주부터 굉장히 빨리 움직여 대응을 잘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이다. 이런 식이니 “아직도 임기가 6개월이나 남았느냐”는 얘길 듣는 것이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