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윤 < 한국외대 명예교수·前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기고] 美中 갈등과 대미·대중 통상전략

트럼프 시대를 전환점으로 미중 관계가 정치적·경제적 갈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미중이 왜 갈등하게 됐는지, 나아가 미·중 경제 의존도가 큰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살펴보겠다.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기점으로 중국 경제 개방이 시작됐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본격 대외지향적 성장 정책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정책은 수출 증가와 소득 증대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커졌고, 그중에서도 대미 흑자가 지속 증가했다.

중국은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해외 기업 유치를 적극 장려했는데 이때 중국 정책 당국은 해외 기업 기술을 중국 기업에 이전토록 하는 정책을 강력 추진했다. 중국 기업이 짧은 시간 동안 기술 수준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책 당국 주도로 합법적·비합법적 방법을 동원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미중간 경제 갈등에도 이러한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의 첨단기술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것 역시 미국이 대중 경계를 강화하는 요인이 됐다.

무리한 기술이전 사례는 한·중 기업 간에도 상당수 발생한 것으로 보도됐다. 1990년 이후 한중 경제 관계에서 대중 수출은 급증했지만,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 기술자를 빼내 가거나 한국 기술자들을 통해 핵심기술을 비합법적으로 유출시킨 사례도 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 시장이 점하는 비중은 25%, 미국 시장 비중은 10% 정도다. 이처럼 중요한 비중을 갖는 미·중이 갈등하고 있어 한국경제로서는 양국으로부터 특정한 선택을 요구받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대해 반도체 생산 관련 기밀 경영정보를 요구한 게 대표적이다. 한국경제가 이러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적절한 대미·대중 통상정책 정립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수출 제품에 있어서 한국 기업의 ‘대중 기술우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술우위가 사라지면 당연히 그 제품의 대중 수출도 없다. 따라서 한국 기업으로서는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대중 기술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국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미국 기업과의 기술협력이 크게 요구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서도 미국 기업이 높은 기술력으로 세계 백신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확일할 수 있다. 예외 품목도 있겠지만 이처럼 전체적인 기술 개발력은 미국이 가장 앞서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으로선 기술력이 높은 미국 기업 및 기술연구소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에 힘써야 한다.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이 대미 수출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바로 그 대중 수출 확보를 위해서도 대미 관계를 긴밀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기술적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가한 비공식 안보회의체)를 만들고 미국 기술력을 한층 더 제고하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및 기술력 증대를 위해서 미국, 일본 및 대만과의 협력 강화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이 중국을 과잉 의식해 미국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동안 한국이 핵심 기술 정보원으로부터 소외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 당장은 나타나지 않겠지만 향후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빠르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정권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중국을 소외시키는 방침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으로서는 더이상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지 말고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의 앞선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 미국 기업 및 기술연구소에 중국인과 중국 기업이 파고들도록 했는데, 이제 한국 기업과 한국 기술자가 그렇게 해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의 대중 수출 우위는 기본적으로 기술격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후발국 기업의 기술 캐치업이 빠르므로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은 빠르게 축소되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의 중국 시장 접근은 점차 기술격차 무역보다는 차별화한 제품을 생산해 중국 기업과의 수평적 분업을 강화시키는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더욱이 규모의 경제에 있어선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보다 월등히 유리하므로, ‘고급 다품목 소량생산’ 접근 방식으로 파고 들어야 중국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경제가 기술력이 높기 때문에 4차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기술기업 및 스타트업 등에서 성장성과 강한 활기를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산기술 개발을 등한시해온 ‘러스트 벨트’(미국 제조업의 호황을 구가했던 중심지였으나 제조업 사양화 등으로 불황을 맞은 지역)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반도체 제품도 한국이나 대만에 크게 의존하는 형국이다.

중국 경제도 그간 산업구도 고도화를 목표로 경제 성장에 주력해온 결과 공산국가답지 않은 심한 빈부격차가 발생, 체제 안정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그 대책으로 시진핑 정부는 ‘공동부유’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정보기술(IT) 기업이나 교육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주택, 의료 서비스 등을 적당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 중이다.

미중 경제의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양국 경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한국경제 발전에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맞춤 전략의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