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규제에 실수요자 피해
감축 실적보다 부작용까지 감안
일본 실패 타산지석 삼아야

강태수 ( KAIST 경영대학 초빙교수 )
[시론] 대출 총량규제 성공한 적 없다

“중국 방식이군요.”

국제금융시장 관계자 촌평(寸評)이다.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 6%’가 규제의 나라 중국을 연상시킨다는 거다. 실제로 막무가내식 대출규제로 황당 사례가 속출한다. 담보물(아파트)이 뒤를 받쳐주는 주택대출이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더 높아졌다. 돈 떼일 가능성을 낮추는 게 담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이유다. 총량규제는 이런 금융 기초상식을 뒤집었다.

최근 대출총량규제 전쟁 최전선 공격수는 금융위원회다. 공격 목표는 가계 부채다. 목표 근처에도 못 갔는데 사방에서 애꿎은 부상자들이 아우성이다. 전세자금 찾아 헤매는 젊은 층이다. 급기야 등 떠밀리듯 실수요자 대책이 나온다.

‘1800조원 가계부채’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문제는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5년 이후 한 번도 줄지 않았다. 이제 국가경제안정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공정’이다. 1800조원 가계부채 누적원인은 수요·공급 양쪽에 있다. 수요 쪽 대표 선수는 50~60대 차입자다. 집 살 때 은행대출에 크게 의존했다.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도 지금 젊은 층보다 느슨했다. 그렇다고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 당시 상황에서 발버둥치며 경제활동 한 죄(?)밖에 없다. 개별 가계더러 가계부채 총량이 너무 늘어나니 이를 감안해 차입을 알아서 자제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들이 국가경제를 걱정해 스스로 경제활동을 조절한다면 정부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공급 측에서는 초저금리로 장기간 유동성을 풀어온 통화당국의 책임이 있다. 한은이 가계부채 증가를 목표로 저금리 정책을 수행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가계의 차입 인센티브를 극대화시킨 게 초저금리 정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뒷북치는 소리가 들린다. 한은 총재는 “모두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점잖게 들리지만 물귀신 작전에 불과하다. 한은 총재는 여론의 이어지는 질문과 비판에 대해 “한은은 이미 상당히 예전부터 금융 불균형 자료를 내고 브리핑까지 했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자료 내고 브리핑하는 것이 한은 본업인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에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는 것으로 책임을 피하려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규제 칼날은 이제 막 경기(대출시장)에 출전한 젊은 층을 향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에 기여한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은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힘든 부담을 떠안은 거다. 불공정을 바로잡는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30대 신혼 가정이나 결혼예정자 등에게는 우선 순위 부여와 대출기회 확대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금융불균형이라는 시한 폭탄을 제거할 때는 완급과 경중을 세련되게 가리는 운용의 묘(妙)가 관건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화끈한’ 감축 실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선진국 당국이 이런 쉬운 길을 몰라 ‘가격조정’에 매달리는 게 아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작용(unintended consequence)까지 감안해야 한다. 눈에 안 보이는 손실이 더 크고 아픈 법이다.

시장 메커니즘을 거쳐야 부작용이 최소화된다. 수요자·공급자 간 복잡한 이해 관계가 섬세하게 조율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가 그런 가격 정책의 예다. 은행이 가계부문에 대출할 때 자본금을 더 쌓도록 하는 거다. 대출이 급증할 때 규제당국은 추가적인 자본적립을 은행에 요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출을 사전에 억제하거나 사후에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는 거다.

일본이 부동산 대출총량규제를 도입한 건 1993년 3월 27일이다. 이 조치는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일본 경제 버블 붕괴 결정타로 지목되고 있다. 남의 얘기로만 치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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