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수도권 집값이 올해보다 5% 넘게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내년도 세입 예산을 짠 것으로 드러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집값 고점론’을 들고나와 부동산 추격매수 자제를 당부하던 때, 정부 안에선 집값 추가 상승을 전제로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국민을 상대로 겉 다르고 속 다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부동산 세수 추계용으로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자료를 사용했다. 국토연은 내년 집값이 올해보다 수도권 5.1%, 지방 3.5% 각각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재부는 이를 근거로 내년 양도세 세수가 줄고 종합부동산세 세수는 늘 것으로 계산했다. 평소라면 이런 추계가 문제될 게 없다. 정부의 집값 전망이나 세수 추계는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올해만 해도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20조원이나 더 걷혀 정부의 추계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른 터다.

문제는 정부의 신뢰다. 기재부가 내년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창 세수 추계를 짜고 있을 때, 홍 부총리는 국민에게 “아파트 가격이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큰 폭의 가격조정이 있었던 만큼 추격 매수를 자제해 달라”고 강조했다. 7월 말 ‘대국민 담화’ 때는 사유재산인 집을 엉뚱하게 ‘공유지의 비극’에 빗대 집값이 폭락할 것이란 ‘공포 마케팅’도 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도 수차례 ‘집값 상투론’을 거들었다. 이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20여 차례 대책을 냈는데도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는 데다 가계부채, 글로벌 금융 상황 악화 등 악재가 겹쳐 뭐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가뜩이나 “정부가 하라는 반대로만 투자하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 신뢰도가 바닥인 처지다. 홍 부총리는 지난 6일 국정감사 때도 “내년 국세 세수 추계에 부동산 가격 전망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다 그제 국감장에서 국토연구원 전망치 반영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의 공식 전망이 아니다”(기재부 공식 해명)고 둘러댔다. 홍 부총리가 처음부터 집값 전망을 알고도 딴소리를 했는지, 아니면 그런 전망 자체를 몰랐는지 알 수 없다. 알고 했으면 심각한 대국민 사기이고, 몰랐다면 무능이다. 어떤 경우든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