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CPTPP 가입 서둘러야 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판이 커지고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에 관한 얘기다. 지난 9월 16일 중국 상무부는 CPTPP 참여 의사를 공식화하며,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질세라 대만 역시 가입 신청서를 곧바로 제출했다. 지난 2월 기존 회원국 외에 가장 먼저 가입 신청서를 낸 영국은 6월부터 공식 협상을 개시했고, 첫 협의가 9월 말 열렸다. 중국과 대만의 가입 신청서 제출과 영국의 협상 개시로 판이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CPTPP의 의미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로 거슬러 가야 한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미국의 패권 국가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심 전략(Pivot to Asia)’을 선포하고,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총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을 제안하고 협상을 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TPP 참여를 철회하면서 물거품이 돼버렸다. 미국의 탈퇴로 망연자실하던 TPP 회원국은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의 주도 아래 CPTPP 협상을 마무리하고, 2018년 12월 발효시켰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언젠가는 CPTPP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 내 상황을 볼 때 당장은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 견제에 미국과 동조하던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를 마무리한 후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폭넓은 행보를 아시아 지역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중국과 대만의 가입 신청서 제출로 인해 상황이 또다시 급변하기 시작한다. 중국이 의도하는 바는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의 무역 규범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미국과 동맹국의 중국 견제 의도를 사전에 무력화하는 것이다. 대만의 기습적인 가입 신청서 제출로 양안 관계가 급속히 악화해, CPTPP를 둘러싼 국제정치 역학 관계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실정이다.

과연 중국이 CPTPP 가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먼저, 신규 신청국가와 CPTPP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영국의 경우 별문제 없이 가입 협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문제가 간단치 않다. 비록 미국이 CPTPP 회원국은 아니지만, CPTPP 회원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다른 자유무역협정(FTA)이 중국의 장애물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USMCA 회원국이 ‘비시장경제’와 FTA를 체결하면 다른 회원국이 USMCA를 종료시킬 수 있다. 즉, CPTPP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중국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USMCA는 파기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또한 CPTPP의 높은 규범 수준을 과연 중국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일부 회원국의 우려가 존재한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CPTPP 규범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중국의 제도개혁 방안을 신청서에 포함했다. 그러나 CPTPP의 공기업, 환경 관련 규정, 추가적인 시장개방 등을 중국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회원국이 많다.

한국은 CPTPP 회원국 중 일본, 멕시코를 제외하곤 FTA를 체결했다. 일본의 경우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을 통해 상호 83% 수준(품목수 기준)의 시장개방을 허용한 상태여서 CPTPP 가입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시장개방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멕시코는 양국 간 경쟁력을 고려한다면 한국 경제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줄 상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존 회원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판이 커지는 CPTPP에 가입해 동아시아의 통상질서 설립에 참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