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세·잔금대출 규제 완화 발표 뒤에도 시장 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전세대출 등을 ‘가계대출 총량관리’ 대상에서 빼주기로 했으나 규제 자체는 그대로 유지해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축소하거나 아예 중단하는 은행이 나오고 있다. 한쪽을 풀어주는 대신 다른 쪽을 조이는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행태다. 또 전세대출 규제를 연말까지만 유예키로 하면서 그 안에 어떻게든 대출받으려는 실수요자 문의가 은행 창구로 빗발치고 있다. “이제는 집 없는 서민을 상대로 대출 선착순을 세우는 것이냐”는 불만이 쏟아지는 이유다. 거칠고 무딘 대출 규제의 부작용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정부의 전세대출 규제 방침으로 계약을 놓친 실수요자들이다. 실수요자의 “우리가 집값을 올렸냐” “왜 집 없는 서민만 괴롭히느냐”는 반발에 꿈쩍도 안 하던 금융당국은 대통령의 보완 지시(14일)가 나오자 그제야 전세대출 예외 방침을 밝혔다. 그러는 사이에 수많은 세입자와 입주 예정자가 계약을 놓치거나 반전세로 바꾸는 등 직간접 피해를 입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실험쥐냐”는 분노가 쏟아지고, 일각에서 “계약금을 떼인 세입자가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 집 마련 대출, 학자금 대출, 급전 신용 대출을 받으려는 다른 실수요자와의 형평성 문제나 대출 규제 유지로 제도 금융권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급전 수요자의 보호 방안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상황이 계속 꼬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인과 대책이 서로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 급증 이유 중 상당 부분이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이다.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주택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학회 설문조사에서도 경제학자의 89%가 가계대출 폭증 이유로 주거비 자금 수요를 들었다.

따라서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집값부터 먼저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규제와 세금 위주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확 바꿔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결론을 놔두고 ‘무작스러운’ 총량 규제로 애먼 무주택자만 잡고 있으니 문제가 계속 꼬이는 것이다. 설사 부동산 대책의 보완 방안으로 대출 규제를 추진하더라도 금리 인상 추세에 맞춰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