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속세제를 22년 만에 개편할 예정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국회에서 “조세재정연구원에 관련 연구용역을 맡겨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22년 묵은 상속세제 개편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간 기재부 행태를 볼 때 시늉만 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기재부는 언제나 세수 확대를 최우선시하며 상속세제 개편을 외면해왔고, 이번 연구용역 발주도 국회의 검토 주문에 떠밀린 것이란 점에서 과연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적지 않다.

한국의 상속세제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세금으로 꼽아도 될 정도다. 최고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경영권이 포함된 대기업 주식에는 20% 할증된 60%의 세계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OECD 국가의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직계상속 기준 15%)의 네 배고, 두 번 상속을 거치면 재산의 84%를 국가가 가져가는 방식은 분명 약탈적이고 징벌적이다. 삼성그룹 유족은 상속세 분납 1차분 2조원을 내기 위해 모두 합쳐도 5%대에 불과한 삼성전자 지분을 벌써 0.33%나 매각했다. 5년 내 더 내야 할 상속세가 여전히 10조원 안팎에 달해 경영권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심리가 최근 주가 급락을 부르기도 했다.

징벌적 과표를 20년 넘게 손대지 않은 건 정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미국만 해도 2018년 1인당 상속세 공제한도를 500만달러에서 1000만달러로 높였고, 1997년부터는 오른 물가만큼 과표를 상향해 주고 있다. 스웨덴이 2004년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는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도 합리적 상속세제 마련에 전향적 자세다. 한국만 정반대다. 물가상승률 반영은커녕 기간 내 신고하면 상속세액의 10%를 깎아주던 것도 2017년부터는 3%로 낮췄다. 사실상의 증세다. 그 결과 총조세에서 상속·증여세 비중은 2.8%로, OECD 평균(0.4%)의 일곱 배에 달한다.

기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일자리와 기업가 정신의 대물림으로 봐야 한다. 독일, 일본 등이 상속·증여세를 전액 공제하거나 자산 매각 시점으로 납부를 유예해 주는 이유다.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꿀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그 정도로 생색만 낼 요량이라면 곤란하다. 상속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한 상속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