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자금 추적을 통해 입증도 하지 않은 채, 녹취록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의 주장은 첫눈엔 어이없어 보인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로서 반성하는 모습은커녕, 검찰을 비판하고 훈계하는 듯한 적반하장 태도 탓이다. 그러나 녹취록을 들려주지 않아 피의자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김씨 변호인단의 문제 제기까지 들어보면 검찰 수사에 의구심이 생기는 걸 어쩔 수 없다.

김씨 측의 당당한 태도는 그만큼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다. 자금흐름 추적은 ‘뇌물·비리 수사의 ABC’인데 과연 시작이나 한 건지, 제대로 하고 있다면 어떻게 피의자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영장 청구 이유에서 곽상도 의원 아들의 화천대유 퇴직금 50억원을 곽 의원에 대한 뇌물공여라고 적시하면서도 정작 곽 의원 직접 조사는 건너뛰었다. 배임 혐의를 적용하고도 그 액수를 ‘미상’(未詳)이라 적은 것도 문제다. 로비와 특혜 제공 책임을 사업 인허가권을 행사한 성남시가 아니라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맞춘 듯한 영장 내용도 ‘꼬리 자르기’ ‘퇴로 열어주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지난 12일 대통령의 수사 지시가 있고 나서야 김씨 영장 청구 등을 서두른 검찰이 의도했건 안 했건, 그 과정에서 수사의 기본을 놓쳐 부실·늑장 논란을 빚고 있다는 심증이 점점 굳어진다.

대장동 의혹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압수수색 확대가 자꾸만 늦어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정감사에서 경기도와 성남시가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이라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 점에서 이들 기관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의 당위성은 더 높아졌다. “국회가 지방사무를 감사할 권한이 없다”는 경기도의 항변을 방패막이 삼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감장을 자기 변론장으로 만들어버리면 진실 규명은 더 멀어질 것이다. 한 차례 늑장 논란을 빚은 검찰·경찰 수사가 날림으로 계속되다가는 자칫 대통령의 신속·철저 수사 지시의 진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 어제 국감에서 “이 지사도 수사 범주에 들어가 있다”고 답변한 서울중앙지검장을 국민은 예의주시할 것이다. ‘특검밖에 대안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포위될지 어떨지는 결국 검·경 손에 달렸다.